첫 해 르망 24시에서는 4대가 참가하여 DNF나 20위 근처의 성적들을 거뒀으며 
두번째 해에는 DAMS 팀이 레이스를 운영해서 15위를, 
세번째 해에 다시 캐딜락이 운영을 맡아 9위, 12위를 받으며 
저조한 순위를 받은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르망 24시에 참가하지 않았다.


캐딜락의 라인업은 2010년대까지는 스포티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자신들이 주장한 방향성과는 다른 차인 DTS와 그 후속작 XTS, 
역대급 실패작 중 하나인 BLS와 같은 전륜구동 차종들이 꾸준히 출시되었다. 
특히 BLS는 '캐딜락의 새로운 방향성에 맞지도 않고 재미있는 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급의 차 중에서 최고도 아니다'는 혹평과 함께 단명했다. 
그래도 DTS나 XTS는 보수적인 장년, 노년층 고객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충족해서 
판매 실적은 괜찮다.


그렇지만 캐딜락은 CTS-V와 XLR-V를 시작으로 
BMW M, 메르세데스-AMG, 아우디 RS, 렉서스 F, 재규어 R과 같은 
고성능 디비전 캐딜락 V를 출범하여 고성능 스포티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스포티한 이미지가 아닌 CTS-V 쿠페와 ATS.V.R 등을 개수하여 
GT3급 레이스에 출전하여 수상하고 2세대 CTS-V로 
뉘르부르크링에서 순정 4도어 세단 최초로 랩타임 8분대의 벽을 깨고 
3세대 CTS-V로 고성능 고급 중형 세단 세계에서 600마력대의 시작을 알리는 등 
단순히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 실제 생산 차량과 모터스포츠에서도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2016년 7월 그룹 내 최상위 브랜드 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GM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캐딜락이, 
향후 계획을 발표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캐딜락의 세단 라인업 계획은 스포츠 세단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다. 
이전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 우베 엘링하우스나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이 ATS 아랫급을 후륜 기반으로 제작한다고 밝혔다가, 
전륜 기반으로 제작하겠다고 발표가 나는 등 이야기가 많았던 ATS 아랫급 차량은 
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날이 성장해가는 크로스오버/SUV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캐딜락에서 최종적으로 밝힌 공식적인 이유이지만, 
사실상 계륵에 가까운 체급의 모델이어서 출시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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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외에도 GM에서는 캐딜락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겠다고 
렌터카로 물량을 왕창 몰아주면서 중고차 가격과 브랜드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뻘짓을 링컨과 같이 밀어붙이고,
1980년대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4-6-8기통 변환 엔진을 장착하는 무리수를 두는 등, 
위에서 상술한 온갖 삽질로 인해 캐딜락은 고급차로서의 옛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모기업 GM의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에 
사람들은 캐딜락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Art & Science와 고성능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부활 (1999 ~ 2024)


캐딜락은 할아버지들의 바퀴 달린 쇼파라는 굴욕적인 평가, 
낮은 판매 실적, 실추된 브랜드 가치를 회복할 계획을 세웠다. 
1999년 북미국제오토쇼에 Evoq라는 컨셉카를 통해 
새로운 캐딜락의 디자인 랭귀지 Art & Science를 선포했다. 


캐딜락이 아트 앤 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인 초창기 디자인이 가장 과감했으며, 
최근의 디자인은 트렌드와 공기역학을 따라가서, 
초기의 각지고 날카로운 조형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의 조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독창성은 유지하면서 세련미를 더하고 있다. 
양산차에서는 1세대 CTS와 XLR부터 Art & Science가 적용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컨셉카 Evoq는 양산차 하드톱 컨버터블인 XLR에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다. 
또한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2002년에 발표된 미드십 스포츠 컨셉트 차량인 
시엔이 주인공 원본의 차량으로 등장하여, 경찰차를 따돌리는 등 나름 활약을 한다.


2000년도, 캐딜락은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궁극적으로는 르망 24시에 다시 참가하기 위해 
노스스타 LMP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당시 아우디, 크라이슬러, 포르쉐 등도 참가 중이었던 LMP900클레스에 참가하는데, 
이는 GM이 쉐보레 콜벳 프로토타입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위해 
관련 인력과 자금을 돌리기로 결정한 2002년까지 이뤄졌다. 
ALMS의 팩토리 팀으로 Riley & Scott 팀이 운영하도록 했고, 
유럽 스포츠 레이싱 월드 컵(European Sports Racing World Cup)에서는 
DAMS 팀이 LMP 운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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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II는 Mk.I을 기반으로 차체 후방 에어인테이크를 증설하고 후미등 형상을 변경하고, 
포드 갤럭시에서 사용한 7L 포드 FE 엔진을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하였다. 
말 많은 변속기 역시 Kar-Kraft가 만든 4단 기어박스로 변경하여 신뢰성을 높였다.


이러한 변경은 차량의 성능과 신뢰성을 한층 높였고, 
그 결과 다음해인 1966년 르망 24시에서는 그 유명한 GT40의 1-2-3 피니시를 찍고 
포디움을 장식하는 쾌거를 올렸다. 
다만 이 때의 르망 24시는 결과에 말이 많았는데, 
브루스 맥라렌이 1등, 그 전까지 앞을 달리던 켄 마일스가 2등으로 들어왔다.


또한 이 차량은 굴욕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이 다음해인 1967년에 일부 개량을 하였으나 신뢰성에 문제가 발생하여 
그 해 데이토나 24시경주에서 페라리에게 작년도 르망 24시 경주에서 포드가 페라리에게 시전했던 
1-2-3 피니시를 그대로 당해버리는 참극이 발생했기 때문.


Mk.III
레이싱 전용인 이전 모델들과 달리 공도 주행이 가능한 규격의 GT40. Mk. I을 기반으로 
엔진 출력을 조금 낮추고 승차감 향상 및 편의 장치 추가를 한 모델이다. 
생산 수량은 7대.


J-car
차세대 GT40 개발을 위한 프로토타입. 
J-Car라는 이름은 1966년 FIA에서 제정한 부록 J 규정을 준수하는 차량임을 의미한다. 
차량의 최초 완성은 1966년 3월에 이뤄졌으나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잠시 개발을 접은 뒤 
그 해 르망에는 Mk.II가 참전했고 포드로서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다시 J-Car의 연구 개발이 재개되었다.

GT40 Mk.II가 7L 엔진을 넣는 것을 목적으로 나머지 개량은 Mk.I에서 크게 이뤄지지 못한 데 비해 
J-Car는 아예 완전히 다른 GT40를 목표로 했고 
7L FE 엔진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 개발한 차량이다. 
차량의 중량을 감소시키면서 운전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알루미늄 재질의 허니컴 구조를 사용하여 차체를 제작했다. 
디자인 역시 공기역학적으로 더욱 최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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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르망은 이전 포스트에서도 잘 설명 했지만

한국에 월드카 개념으로 GM 오펠의 카데트 E를 조립생산한 것인데, 

카데트 E가 유럽시장에 등장한 것은 1984년으로 사실상 기술적으로 뛰어난 차량은 아니었다.

1986년 3도어 해치백 레이서와 르망살롱(GTE), 

1988년 5도어 해치백 펜타파이브, 1989년 GSI와 1.6 TBI, 1990년 임팩트, 

1991년 이름셔 등 정말 다양한 엔진 및 트림을 내놓았고, 

특히 날렵한 디자인과 중후한 승차감, 

다른 차량에 비해 넓은 실내공간으로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현대 엑셀 가격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하지만 르망은 소형차중에 가장 고가였고, 

젊은이들이 돈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한국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 기어비로 인해 

가벼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둔중하기 이를데가 없이 느껴지는 낮은 순발력에, 

당시 대우차 특유의 엉망진창인 조립품질이 더해져 시장에서도 고만고만한 판매율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엑셀의 등장은 상당히 신선한 것이었다. 

1988년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Y2 쏘나타의 얼굴과 꽁무니를 

그대로 이식한 듯한 모습에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스타일은 소형차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중후한, 40대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실내 디자인은 소형차의 기본에 충실하였고, 

쏘나타에 달리던 전자제어식 연료분사장치를 달아 힘과 연비를 동시에 잡았다.

현대 엑셀 가격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당시 잡지 기사를 보면 엑셀을 마치 스포츠카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균형잡힌 기어비와 리스폰스가 우수한 엔진의 감각 덕이지, 

실 성능은 체감 성능만큼 라이벌들을 압도할 정도는 절때 아니었다.

공차중량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아무리 우리나라에 적절한 기어비와 좋은 엔진을 사용했지만

공차중량이 무려 950Kg으로 프라이드 860Kg, 르망이 935Kg임을 감안하면 돼지수준이였다.


하지만 실제 운전자들의 체감성능은 매우 경쾌하고 날렵했으며, 

연비면에서 프라이드와 비교해서도 그다지 꿀리지 않으면서 

결정적으로는 현대자동차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세팅이자, 

한국사람들이 차량 선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부드럽다 못해 물컹할 정도의 안락한 승차감 또한 라이벌들의 경쟁력을 깎아내렸다. 

현대 엑셀 하체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현대가 기본적으로 스프링과 댐퍼를 워낙 무르게 세팅한 탓도 있지만, 

구조상으로도 프라이드나 르망은 리어에 토션빔 서스펜션을 채용했지만, 

엑셀은 리어에도 독립식 서스펜션인 풀 트레일링 암 방식을 채용했기 때문에 

승차감에서는 감히 명함도 못내밀 정도의 수준이었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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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런저런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자.


캐나다에는 폰티악 브랜드 대신에 '아스나' 라는 브랜드로 뱃지 엔지니어링 되어 

현지에서 아스나 GT라는 이름으로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판매된 바 있다. 

미국에서 폰티악 르망이 단명한 것과 달리, 

이쪽은 장수한 것이 특징. 

하지만 아스나라는 브랜드 자체는 1994년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이러니 

브라질에서는 쉐보레 카데트로 팔렸다.

canada asuna g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의도하지 않게 2015년까지 약 30여 년의 기간 동안 생산된 롱런 모델이 되었다.

바로 우즈베키스탄에서 희한하게 히트를 쳐서 대우그룹 붕괴 후 우즈대우라는 이름으로 생산이 되었다.

uz daewo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오펠은 이후 소형 자동차 라인에서 카데트라는 이름 대신 

오펠 아스트라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는데, 

이 아스트라의 최신 모델은 쉐보레 크루즈 및 올란도와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크루즈의 기본 설계가 GM대우에서 출시한 라세티 프리미어이니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다.


광고 모델들이나 성우들이 지금 보면 굉장한데, 

1988년도부터 1989년까지 배우 홍요섭 씨가 모델을 맡았으며, 

성우로는 김기현씨가 있었고, 1989년 하반기부터 1991년까지는 길용우씨가 모델이었다!


KBO 한국시리즈에서는 1988년과 1989년의 한국시리즈에서 

MVP가 된 해태 문희수 선수와 박철우 선수에게 르망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베트남 르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90년대 중후반에 중고차 수출 붐이 시작될 무렵, 

중고차 수출로 르망이 인기매물로 크게 각광받아서 한동안 적지 않은 르망들이,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동구권, 중국 등지로 중고 수출 되었다고 한다. 

특히 베트남과 러시아에서 르망이 중고차로 꽤나 인기였다고... 

한마디로 국산 중고차 수출 붐의 초창기를 장식한 차종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94~1995년에는 호주로도 수출되었는데 호주 수출형은 대우 1.5i라는 

상당히 단순한 네이밍으로 수출되었다. 

뉴 르망 출시 이후 년식인데도 불구하고 호주 수출형은 르망 GTE도 아니고 

르망의 최초기형인 르망 GSE의 외형을 하고 있었는데, 

내장재나 휠캡은 뉴 르망과 같다보니 겉은 구형인데 속은 신형이라는 오묘함을 보여주었다. 


다만 동시기에 수출된 같은 우핸들 형태인 태국 수출형의 경우는 

뉴 르망의 외형 그대로 우핸들로 바꿔서 수출되었다. 

수출명은 판타지라고 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자동차로 나온다.


영화감독 봉만대의 옛 차량 중 하나였다고 한다. 

동호회에 가입하여 스티커를 붙이고 상세하게 관리할 정도로 애지중지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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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특징은 대우자동차만의 특징이 아니라 기본이 된 오펠, 그리고 독일차들의 특징이다.

독일의 아우토반 처럼 속도 무제한 구간이 꽤 많았으므로

이에 최적화 하여 아무래도 고단기어가 중점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무리 고속도로여도 120Km이상 밟을 일이 없고

시내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 기어비가 영 맞지를 않았다.

독일 아우토반 르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국내에서는 현대 엑셀에 밀려 2인자 자리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꽤나 잘 팔려서 대우자동차 입장에서는 상당한 효자 차종이었다. 

심지어 북미 수출시장에서는 조립생산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차량 최초로 우수 품질차량 TOP5에 뽑히는 등 그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런 소식들로 인해 안일해졌던 대우자동차는, 

제대로 된 후속도 없이 르망에 외형만 조금 고친 씨에로/넥시아를 내놓는 무리수를 두어 

당시 완전 변경 신차였던 아반떼에게 압살당했다. 

뉴르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실은 그 전에 이미 엑셀보다 한 단계 커져서 르망 사이즈와 같아진 엘란트라에게 

고전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야심작이라고 내놓은 것이 겨우 씨에로/넥시아였고, 

여기에 대한 현대의 답변이 아반떼였던 것이다.

오펠 카데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다만 르망의 베이스인 오펠 카데트는 독일 내에서 폭스바겐 골프의 라이벌격 모델이었고 

그걸 20년간 숙성시킨 E형인데 아무리 디튠했다 하더라도, 

엑셀과 비교하기에는 레벨이 다르긴 하다. 

그런데 레벨의 차이니 어쩌니 해도 좋은 차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장사를 제대로 못 해먹은 대우차의 병크는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차는 엑셀과 같은 현기차였고

르망은 조금은 맞지 않았던게 크지 않았을까?


그리고 로얄 시리즈처럼 기어를 조작하는 방식이 현대나 기아차의 방식과 무척 달라서 

처음 운전하는 사람의 경우 후진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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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서

1991년 10월에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뉴 르망이 출시되었다. 

기존의 트림은 GTi, ETi, STi 3개로 재편되었고, 

이때부터 기어 패턴을 제외한 대시보드 구성이나 에어컨을 비롯한 스위치 형태가 

현대/기아차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 

뉴 르망 91년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93년 5월에 4도어 세단은 또 한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리어 램프가 직사각형으로 바뀌고, 

파워 안테나의 위치도 조수석 앞 펜더 근처에서 운전석 뒷 펜더 근처로 옮겨진 

1994년형이 선보였다. 

동시에 세단, 3도어(레이서), 5도어(펜타-5) 모두 에스페로의 1.5L DOHC 엔진을 얹고 

에스페로의 휠커버를 장착한 최상급 트림인 RTi가 추가되었다.

뉴 르망 93년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94년 5월에 씨에로가, 1995년 3월에 씨에로의 해치백 버전인 넥시아가 각각 출시되었으나, 

씨에로/넥시아가 르망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오히려 기존 르망이 더 많이 판매되어 기존의 르망도 병행 생산되었다. 

대신 1.5L DOHC 엔진과 기존 GTi와 RTi 트림을 씨에로에 이관시키면서 

STi 는 르망 BX로, ETi는 르망 EX로 각각 재편되었다. 


1996년 11월에 씨에로와 르망의 통합 후속 차종인 라노스가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병행 생산되었다. 

1997년 2월에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만 10년 8개월 동안 내수 시장에서 536,254대, 수출 516,099대, 합쳐서 1,052,353대가 판매되었다.

뉴 르망 94년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아주 많은 라인업과 트림으로 보아

아주 인기가 좋았던 차라고 할 수 있다.


이 르망의 특징으로는

폭스바겐 골프를 타겟으로 삼은 카데트를 기초로 한 차답게 

단단한 차대강성과 균형잡힌 하체 밸런스로, 

고속에서나 코너에서나 경쟁 차종인 현대 엑셀보다 우위에 있었다.


본래 2000cc까지 엔진이 탑재되는 차를 1600->1500cc로 변경한 탓도 무시할순 없으나, 

GM의 압력 때문에 차를 그대로 가져다 팔았던 대우자동차의 상황이 겹쳐, 

가볍고 날렵한 평을 받는 라이벌인 현대 엑셀이 공차중량 950kg이었는데 반해

르망은 엑셀보다 더 가벼운 몸무게인 935kg 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취향과는 전혀 맞지않는 유럽형 기어비를 그대로 가져온 관계로 

현대 엑셀이나 배기량이 한체급 낮은 프라이드 보다도 초반가속이 굼떴다. 

대우자동차의 고정 관념인 '스타트는 굼뜬데 고속은 좋다'는 르망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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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이름셔이다.


르망 이름셔는 1991년 2월 22일에 출시되고 25일에 시판, 

1년도 안 돼서 단종되어 버린, 비운의 자동차이자 당시 한국의 공도 깡패였다.


이름셔는 오펠의 메이커 튜너로서 말 그대로 르망을 이름셔 사에서 튜닝한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BMW M이나, 벤츠 AMG같은 개념인것이다. 


2000cc는 출시도 하지 않고 1600cc조차 디튠해서 출시된 기존의 르망과는 달리, 

2000cc의 배기량으로 현대 스쿠프 터보급의 가속력에 값비싼 제품으로 무장된 하체로 

뛰어난 코너링 등으로 이 자동차를 도로에서 이길 한국 차량은 없었다. 

르망 이름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르망 이름셔의 특징을 보자면


이름셔의 엔진튜닝

이름셔 전용 휠

형상기억물질이 포함된 이름셔제 에어로 파츠

포르쉐에 주문제작한 서스펜션

현재도 비싼 시트로 유명한 독일 레카로사의 버킷시트

르망 이름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등등으로 중무장하고 나와서 사람들을 경악시켰고, 

1,200만원이라는 당시 중형차 풀옵션을 싸다구 때리는 가격표에 또다시 경악을 했다.

당시에 한단계 윗급인 대우 프린스의 풀옵션이 1,000만원이 조금 안되는 가격이였고,

여기에 자동변속기를 추가해야 간신히 1,000만원을 넘겼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가격이였다.


여담으로 배우 최민수씨가 이 차의 오너중 하나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이크로 취미를 옮기면서 오래전 처분한듯. 

1990년대에는 류시원도 이 차를 보유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르망 이름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당시 변변한 튜너도 없는 척박한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이러한 자동차를 출시한 대우자동차의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 비싼 가격에 1년만에 단종되고 말았다. 


2012년 까지는 르망 이름셔는 5대 미만이 아직도 도로에 달리고 있다고 하며 

2011년 천만원이 넘는 가격에 중고거래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메이커 튜닝을 거쳐서 정식으로 발매된 차가 

르망 이름셔를 제외하고는 없다는 의견이 있지만, 

모든 튜닝 부품이 수입에 불과한지라 대우자동차의 역할은 그다지 없다고 봐야한다. 

모터스포츠에 나가서 많은 활약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시도를 했었다는 것에는 경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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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소개할 차는 지난번 매그너스에 이어 대우자동차이다.

바로 르망에 대해서 알아보자.


월드카를 표방하면서 1986년 7월 GM 산하 독일의 오펠이 개발하고, 

대우자동차에서 생산하여 북미에서 GM 산하의 폰티악이 판매하였던 전륜구동 소형차가 바로 르망이다.

1997년 초에 단종될 때까지 도합 105만대가 생산되었다.


국내에서도 폰티악 앰블럼을 달고 팔렸다고 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에 보이는 것이 그것이 바로 폰티악 엠블럼이다.

이때 부터도 수입차인건가...;; 

르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독일에서는 폰티악 앰블럼을 붙이지 않고 판매되었다고 한다.

애초에 만들기는 오펠이 만들었으니...


오펠의 소형 라인업인 카데트(Kadett) E형을 베이스로 한 차량으로, 

본래 배기량 1600/2000cc 엔진을 탑재한 차량이었지만, 

대한민국의 대우자동차가 생산을 맡게 되면서 가격 문제 및 세금 문제로 인해 

1500cc로 다운 사이징하여 판매하게 된다.


이름의 유래는 유명한 내구 레이스 대회인 르망24시가 열리는 프랑스의 도시 르망이다.

르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시판한 지 3개월 뒤인 1986년 10월에 3도어 해치백인 르망 레이서가 추가되었고, 

여기서 얼마안가 림범퍼를 적용해 안전성을 높이고, 

전자식 계기판을 적용하고 중후한 느낌의 디자인을 적용한 GTE 트림이 각각 추가되었다. 

GTE 트림에 적용된 디지털 계기판은 국내 소형차 중 최초로 적용되었고, 

대우자동차의 기함이었던 로얄살롱 슈퍼에 이어 두번째로 적용 되었다고 한다.

르망 디지털 계기판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88년 3월 5도어 해치백인 르망 펜타-5가 추가되었고, 

그 해 9월에 최고출력 96마력의 1.6L TBi도 추가되었다. 

1989년 2월에는 택시 트림이 추가되었다.

그 해 5월에는 GSE 트림, GLE 트림, LS 트림 등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스포티한 느낌의 GSI 트림으로 바뀌었다.


1990년 3월에는 소폭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4도어 세단 중 GTE 트림은 리어 램프가 6등식에서 4등식으로 변경되었고, 

샬롱, 스폐셜, 포커스의 3트림으로 나누어졌다. 

같은 해 5월에는 르망 GTE에 2,000㏄ 엔진을 장착한 트림인 르망 임팩트가 추가되었다. 

1991년 2월에는 르망 GSI의 튜닝 트림인 이름셔가 출시되었다.



Posted by 그대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