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에는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해 그릴을 은색 페인트로 마감한 
검은 플라스틱 그릴로 변경했으며, 
왜건 버전의 우드그레인도 스트라이프 데칼로 대체했다. 
1977년에는 런플랫 타이어가 1275GT의 기본 사양으로 적용되었으나, 
핸들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너들에게 외면받았다.


초대 클럽맨과 1275GT는 미니를 고급화해 업데이트한 차로서 등장했지만, 
르노 5와 피아트 127, 포드 피에스타로 대표되는 슈퍼미니급 소형차들의 물결에 휩쓸리자 
시장에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다만 왜건 버전은 디자인 완성도와 실용성 때문에 그나마 호흥을 얻을 수 있었다.

 1978년과 1979년에는 리처드 롱맨과 알란 커누가 1275GT를 타고
영국 투어링카 챔피언쉽(BTCC)에 출전해 2년 연속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브리티시 레일랜드에게는 큰 도움이 되어 주질 못했고, 
1980년대 후속으로 오스틴 메트로가 도입되자 
클럽맨 세단과 1275GT가 단종되었으며 
왜건 버전만 1000HL이라는 이름으로 1982년까지 판매되었다. 
단종 때까지 세단 275,583대와 1275GT 110,673대, 왜건 197,606대가 생산되었다.


2세대 (2008~2015)
2008년에 미니의 왜건 버전으로 등장했으며, 
미니 해치백과 컨버터블, 쿠퍼, 쿠퍼 S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던 미니 브랜드의 라인업에 
다양성을 조금씩 더하는 데 기여했다. 
디자인적으로는 오스틴과 모리스 브랜드로 출시된 왜건 버전인 
컨트리맨/트래블러를 모티프 삼아 디자인했다.


기존 2도어 해치백형 미니의 길이를 240mm 늘려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넓힌 실용적인 파생 차종이다. 
뒷좌석을 접지 않고도 680리터나 되는 트렁크 용량을 확보할 수 있는데, 
트렁크도 트윈 스윙 도어를 달아 냉장고처럼 좌우로 열리기에 높은 짐도 쉽게 실을 수 있다. 
좌우 개방형 코치 도어가 뒷좌석에 달려서 뒷좌석에 드나들기 쉽게 만들었는데, 
특이하게도 오른쪽에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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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클래식 미니들은 약 2~3천만원 대의 가격에 거래된다. 
한국 내 까다로운 배기가스 기준 때문에 카뷰레이터 모델 보다는 
주로 일본에서 이삿짐으로 수입된 최후기형 우핸들 차량이 많다. 
신사동의 로이스 자동차 정비소에서 좌핸들로 교체 가능하며, 
비용은 대략 200만원 정도.


1994년 BMW가 영국의 로버 그룹을 인수하면서 미니의 권리를 같이 사들였으나 
심각한 적자 탓에 2000년에 로버를 공중분해하게 되는데, 
랜드로버는 포드에 넘기고, 
로버와 MG는 단돈 1파운드에 영국의 사모 펀드인 피닉스 컨소시엄에 넘겼지만 
미니 상표만큼은 잔류하게 했다.


BMW가 미니 상표를 팔지 않은 이유가 재밌다. 
로버 그룹의 인수를 주도했던 사람은 베른트 피셰츠리더 회장이었다. 
피셰츠리더 회장의 할머니와 미니를 개발한 알렉 이시고니스의 어머니가 자매였기에 
피셰츠리더는 미니를 놓기 싫었겠고 이후에는 이미 신형 미니가 개발이 진행 중이었기에 
미니만큼은 팔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에는 라이벌인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소형차인 A클래스 출시와 동시에 
스마트라는 초슈퍼 미니 상표를 육성 중이었고 
또 다른 라이벌인 폭스바겐도 뉴 비틀을 출시하면서 소형차계의 입지를 다져 가고 있었다.


이후 피셰츠리더 회장은 1999년 2월에 로버 그룹 인수를 책임지고 사퇴했다. 
하지만 피셰츠리더 퇴임 후의 BMW도 이러한 소형차 상표 전투에서 맞설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미니를 조금 더 집중적으로 육성해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굳힌 것이다. 
BMW의 본래 라인업과 달리, 
전륜구동을 유지한 채 레트로풍의 디자인을 리메이크해서 이름을 이어 가고 있다. 
즉, 옛날차같은 모양을 아이덴티티 삼아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다만 극단적인 경량화를 추구하는 같은 동네의 경량 퓨어 스포츠카 상표 같이 
서스를 대단히 단단하게 세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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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C와 레일랜드의 합병으로 설립된 브리티시 레일랜드 산하에서는 
오스틴과 모리스, 울즐리, 라일리 상표로 나오던 미니를 “미니“라는 단독 상표로 통합했다. 

울즐리/라일리 버전은 오리지널 클럽맨으로, 
트래블러/컨트리맨은 클럽맨 에스테이트로, 
쿠퍼와 쿠퍼 S는 1275GT로 통합했다. 
기존의 오리지널 미니는 배기량별로 850과 1000으로 트림을 나누어 판매했다. 
또한 밴과 픽업 버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부터는 판매량이 거의 매년 감소치를 보이게 되었고, 
알렉 이시고니스조차 1971년을 기점으로 은퇴하면서 
BL에서는 후속차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미니에다가 현대다운 앞 모습을 가미한 클래식 클럽맨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이시고니스가 자신이 설계했던 미니 9X의 양산화를 계속 제안하거나 
BL 내에서 새로운 소형차 프로젝트인 ADO74가 진행되고 
심지어 베르토네식 디자인의 이노센티 미니를 들여오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들은 회사 내 내분과 석유파동 등에 의한 BL의 파산, 
그리고 이로 인한 국유화를 거치며 물거품이 되었다.


1980년대를 앞두고 미니의 설계가 노후해지자, 
BL에서는 1974년부터 미니를 대체하고자 당시 기준으로 현대적인 설계의 소형차인 
오스틴 메트로(ADO88/LC8)를 개발하나, 
1980년에 출시된 이 차도 미니를 대체하지는 못하고 1997년까지 별도의 모델로서 판매되었다. 
또한 이 둘을 동시에 대체하는 오스틴 AR6 프로젝트까지 비싼 개발비용과 
오스틴 상표의 폐기, BL의 새로운 모회사였던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 거부를 이유로 
취소되어 1988년에 계획된 단종도 무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미니 클럽맨도, 픽업 및 밴도 존재하지 않고 예전처럼 단순히 경제형 차로 판매되었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로버 K-시리즈 엔진을 얹고 인테리어와 차체 구조를 개선한 
"밍키(MinKi)"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현대화를 시도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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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영국식 2인승 라이트웨이트 로드스터라는 컨셉에 걸맞는 

준수한 핸들링과 주행안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클래식한 외모 덕분에 이 차량이 계속해서 생산된다는 사실 자체로도 

전 세계의 차덕후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연간 내수 100대와 수출 200대'라는 목표를 두고 

평택 공장의 수가공 라인을 돌렸는데, 

평택에선 밤새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직원들은 거의 노이로제 상태였다고 전해지는 설이 있을 정도로 

쌍용자동차에서 칼리스타에 거는 기대는 큰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판매가만 3300만~3800만원 수준이라서, 

당시의 사치품을 배격하는 국민감정에 밀려 예상보다 1년 빠른 1994년에 생산이 멈춘다. 

그것도 연 20대 내외의 판매에 머물러서, 단종 시점에서 최종 생산대수가 고작 78대였다.

쌍용 칼리스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92년 기준으로 최고급 세단이 1800에서 1900만원 수준이었다. 

레이싱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20세기 한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3천만원 중후반대의 2인승 로드스터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3800만원은 2017년 시점에서도 꽤나 높은 가격이다.


여담이지만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 이 차를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별다른 근거는 없다. 

애시당초 재벌그룹에서 오너가 싫어하는 일이 이루어질 리가...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누가 이런 멍청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말인가? 

자동차에 꽂혀서 쌍용그룹 다 말아드신 분이 나중에 오리발 내미는 얘기를 그대로 받아쓴 듯 하다.


쌍용자동차 마크를 달고 생산된 최후의 칼리스타 78대 중 

약 60여대가 해외의 자동차 수집가들에게 반출되었고, 

교통사고로 말아먹은 몇 대인가를 제외하고 나면 2010년 기준으로 

16대가 국내에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쌍용 칼리스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워낙에 희귀한 차량이라 오너들 사이에서도 극도로 조심스럽게 운행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희귀성에 걸맞게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중이라고 한다. 


2016년 초까지는 서울디자인고등학교/동도중학교 맞은편 사진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건물 일부가 약국으로 바뀐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이다. 

전시했던 차종은 구형 초록색 번호판인 점이나 

타이어 마모가 거의 되어 있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말로 쇼윈도 장식용으로만 배치해 둔 것으로 보인다. 

간혹 사진 촬영용으로도 쓰이기는 한 듯 하다.

쌍용 칼리스타 보배드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보배드림에 2016년 5월 3일자로 매물이 나왔다가 7월 기준으로 거래 완료 상태.

5800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을 자랑하며, 

31,900km의 짧은 주행거리나 관리 상태를 보면 

사실상 소장용으로만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딜러들이 차량을 개인 소유할 목적으로 거래 완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제3자가 사갔는지 딜러 소유로 전환되었는지는 판별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같은 팬더사의 차량으로 솔로의 후속차량인 솔로 II(Solo II)또한 

해외에서도 몇대 남지 않았다는 소리가 있다


울산에 있는 주연자동차프라모델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주행가능한상태라고 한다.


이 차량을 보개 된다면 바로 로또 사러 가시기를 바란다.

엄청난게 희귀한 차량으로 이제 박물관에서나 봐야할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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