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터와도 장기간 공유 특히 D4BA D4BF D4BH엔진... 

그나마도 포터와 그레이스는 중간에 D4BB엔진으로 배기량을 올리는 

소소한개량을 거쳤으나 갤로퍼는 그것도 아니었다. 

계속 D4BA D4BF만을 사용했다. 

심지어 나중엔 쏘렌토와 스타렉스,리베로 그리고 포터2,봉고3 후속모델인 테라칸에까지 얹는 

그 D4BH (TCI)엔진을 사용함으로써 테라칸은 렉스턴에 처절하게 밟히는 바람에 

결국 기아의 2900cc J9엔진으로 바꿨지만... 


그래서인지 중저속에서의 가속력은 좋았으나 

시속 140km로 4~5시간 달리는 건 매우 큰 부담이었으며, 

괜히 엔진 출력 올려보겠다고 튜닝을 했다가는 엔진이 버티질 못하였다. 

갤로퍼 엔진 수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경쟁 모델인 무쏘가 88만km를 무보링 상태로 달리는 기염을 토한 반면 

갤로퍼의 엔진은 대략 20만km 정도면 엔진 보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실제 갤로퍼 매니아들도 엔진을 튜닝하는 것은 자제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는 파제로 디젤모델의 판매지역의 특성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은 80년대 당시 제한속도가 제일 빨라봐야 시속 80km 이하였고, 

디젤을 주력으로 수출했던 유럽 지역 역시 아우토반 같은 곳이 아닌 이상 

제한속도가 대체로 한국 도로보다 낮게 설정되있기에 

굳이 고속주행을 고려해서 설계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게다가 파제로가 일본의 좌측 통행 기준으로 설계 및 디자인 된 차량이라, 

갤로퍼 역시 이 파제로의 설계를 그대로 적용하여 후방 트렁크 문 역시 

좌측에서 열도록 되는 바람에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여간 불편하고 위험한 게 아니었다.

미쓰비시 파제로 엔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다만 이는 갤로퍼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모델인 미쓰비시 파제로의 

우측 통행 국가 전용 수출 모델에도 똑같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현대 측에서 성의가 없어 수정을 안 한 게 아니라 

원래 모델 제조사이자 당시 현대의 자동차 기술의 근간이자 현대자동차의 대주주로 

경영에도 참여했던 미쓰비시의 입김 때문에 

국내 사정에 맞게 설계 수정을 하고 싶어도 못했다 보는 게 맞다.


나중에 미쓰비시 자동차의 입김이 줄어들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후속 라인업 테라칸에는 현대자동차가 아예 뒷문을 해치 게이트로 변경해 버렸다. 

갤로퍼 트렁크 방향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결국 이 트렁크 문짝 설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쓰비시의 파제로 후미 디자인에 대한 똥고집에서 비롯된 것이며, 

갤로퍼 개발 당시 현대는 자동차 분야에서 미쓰비시의 손에 놀아나던 상황이었기에 

미쓰비시의 요구에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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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는 자잘한 고장과 크기/성능 등의 문제로 판매가 많지 않았고, 

쌍용자동차의 코란도와 코란도 훼미리 역시 성능이 많이 떨어졌고 

프랑스/일제/미제 엔진과 변속기들을 섞어쓰던 막장상황이라 

온갖 문제점을 노출하던 시절인데 비해, 

갤로퍼의 경우 미쓰비시 자동차의 세계시장 최대 히트작인 파제로를 

거의 재조립해서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차량의 성능이나 신뢰성 면에서 

이미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쓰비시 파제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당시 4WD 차량과 대형 상용차만 제작하던 쌍용자동차는 

한 때 회사가 존폐 위기까지 처하기도 하는 등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독일의 고급 메이커인 메르세데스 벤츠와 합작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FJ 프로젝트를 통해 2년 뒤인 1993년에 93 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4WD 신모델인 무쏘를 출시하여 회심의 일격을 제대로 날리며 

그 동안의 4WD 모델 전문 제작사로서의 명성을 되찾아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미쓰비시 파제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갤로퍼 전기형의 경우 외형만 보면 파제로 모델에서 미쯔비시 글자를 현대로 바꾼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초기부터 인기몰이를 했다.

가솔린 모델의 경우 3.0 외에 2.4도 92년 8월에 출시한 적이 있지만, 

판매량이 저조하여 조용히 삭제되었다.


93년 하반기에 인터쿨러도 출시되었지만, 

초기형에 인터쿨러는 의외로 상당히 레어템이다.


여담으로 대부분의 차가 한국에서 흑색, 백색, 회색, 은색 같은 무채색 컬러가 

주력인것과 달리 초기형 갤로퍼는 은근히 유채색 컬러의 비율이 높다.

갤로퍼1 색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갤로퍼 후기형(판매 당시의 정식 명칭은 뉴 갤로퍼)의 경우

헤드램프와 그릴을 살짝 손 보고, 

사이드미러를 플래그 타입으로 변경했는데, 

여기까지는 여전히 파제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롱바디 모델에 후석 암레스트 등의 몇가지 편의장비가 추가되었다. 


1997년 출시된 갤로퍼2의 경우는 기존 갤로퍼보다 곡선이 군데군데 들어가서 

비교적으로 날렵해보인다.


갤로퍼2 전기형은 현대정공을 뜻하는 찌그러진 H자가 쓰이게 된다.

2000년 5월 22일에 출시한 갤로퍼2 후기형 부터는 아예 현대자동차 로고를 대놓고 장착한다. 

슈퍼엑시드 한정으로 운전석 에어백, 가죽시트, CDP가 적용되었으며 

V6 가솔린 모델이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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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주영 회장의 뜻에 힘입은 현대정공 사장 정몽구는 

1989년 7월 4WD 고유모델 개발 추진을 결정한다. 

프로젝트명은 "M-CAR". 

마북리 연구소를 건립하고 현대자동차의 엔진과 국산화 부품을 활용해 

고유모델 개발에 힘을 쏟아 4WD 모델 시제품을 개발하였고, 

미국 업체의 도움으로 미국 시장에서 성능테스트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대 실패였다. 

갤로퍼 초기형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일반 승용차에 비해 차체 구조가 복잡하고 높은 강성과 품질이 요구되는 특성을 지녀 

설계가 까다로웠고, 미국 시장의 소비자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데다 

이미 지프 등의 기라성 같은 메이커들이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라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정몽구 사장은 고유모델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에 신뢰성 있는 메이커 업체의 4WD 모델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전략으로 급선회 한다. 

고유모델 개발만 고집하다가 시장에 제대로 진출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라이센스 모델 생산으로 완성차 시장 진출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신기술을 빨리 습득하여 배우면서 실력을 쌓자는 의미가 컸다.

미쓰비시 파제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여러 차종의 검토를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미쓰비시 자동차의 유명 4WD 모델인 

1세대 파제로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파제로가 4WD 모델로서는 상당히 명성이 큰 것도 있었지만, 

제작사인 미쓰비시 자동차가 이미 현대자동차와 다양한 분야에서 제휴를 맺어온 파트너였기에 

협업도 쉬울 것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 되었다. 

게다가 당시 1세대 파제로는 일본의 경제력향상에 따른 SUV붐을 타고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2세대 모델 개발에 착수하며 거듭나던 시점이었기에, 

미쓰비시 자동차 입장에서 구형이 된 1세대 파제로의 기술을 현대정공에 넘겨도 

해가 될 일은 아니었다. 


1989년 10월에 양사는 사업 추진 의향서를 교환하고, 1990년 3월에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한다. 

갤로퍼 1호차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91년 9월 16일 갤로퍼 1호 차량을 생산하고 

그 다음주인 25일에 외부에 최초로 공개하여 10월부터 출고가 시작되었다. 

디젤 롱바디를 먼저 선보이고, 

11월에는 자동변속기 모델, 12월에는 터보 디젤엔진 롱바디 모델이 출시되었다.


출시 당해인 1991년에 약 3개월 동안만 무려 3000 여 대 가까이 판매를 기록하며 

쌍용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만 생산하던 4WD 시장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인 1992년에는 총 2만 4천 여 대가 판매되면서 

국내 4WD 시장의 52%를 차지하며 순식간에 장악을 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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