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영국식 2인승 라이트웨이트 로드스터라는 컨셉에 걸맞는
준수한 핸들링과 주행안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클래식한 외모 덕분에 이 차량이 계속해서 생산된다는 사실 자체로도
전 세계의 차덕후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연간 내수 100대와 수출 200대'라는 목표를 두고
평택 공장의 수가공 라인을 돌렸는데,
평택에선 밤새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직원들은 거의 노이로제 상태였다고 전해지는 설이 있을 정도로
쌍용자동차에서 칼리스타에 거는 기대는 큰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판매가만 3300만~3800만원 수준이라서,
당시의 사치품을 배격하는 국민감정에 밀려 예상보다 1년 빠른 1994년에 생산이 멈춘다.
그것도 연 20대 내외의 판매에 머물러서, 단종 시점에서 최종 생산대수가 고작 78대였다.
1992년 기준으로 최고급 세단이 1800에서 1900만원 수준이었다.
레이싱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20세기 한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3천만원 중후반대의 2인승 로드스터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3800만원은 2017년 시점에서도 꽤나 높은 가격이다.
여담이지만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 이 차를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별다른 근거는 없다.
애시당초 재벌그룹에서 오너가 싫어하는 일이 이루어질 리가...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누가 이런 멍청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말인가?
자동차에 꽂혀서 쌍용그룹 다 말아드신 분이 나중에 오리발 내미는 얘기를 그대로 받아쓴 듯 하다.
쌍용자동차 마크를 달고 생산된 최후의 칼리스타 78대 중
약 60여대가 해외의 자동차 수집가들에게 반출되었고,
교통사고로 말아먹은 몇 대인가를 제외하고 나면 2010년 기준으로
16대가 국내에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에 희귀한 차량이라 오너들 사이에서도 극도로 조심스럽게 운행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희귀성에 걸맞게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중이라고 한다.
2016년 초까지는 서울디자인고등학교/동도중학교 맞은편 사진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건물 일부가 약국으로 바뀐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이다.
전시했던 차종은 구형 초록색 번호판인 점이나
타이어 마모가 거의 되어 있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말로 쇼윈도 장식용으로만 배치해 둔 것으로 보인다.
간혹 사진 촬영용으로도 쓰이기는 한 듯 하다.
보배드림에 2016년 5월 3일자로 매물이 나왔다가 7월 기준으로 거래 완료 상태.
5800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을 자랑하며,
31,900km의 짧은 주행거리나 관리 상태를 보면
사실상 소장용으로만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딜러들이 차량을 개인 소유할 목적으로 거래 완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제3자가 사갔는지 딜러 소유로 전환되었는지는 판별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같은 팬더사의 차량으로 솔로의 후속차량인 솔로 II(Solo II)또한
해외에서도 몇대 남지 않았다는 소리가 있다
울산에 있는 주연자동차프라모델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주행가능한상태라고 한다.
이 차량을 보개 된다면 바로 로또 사러 가시기를 바란다.
엄청난게 희귀한 차량으로 이제 박물관에서나 봐야할 차량이다.
'탈것들에 대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극명한 장점과 단점, 다마스 - 2 (0) | 2017.09.29 |
---|---|
국민 상용차, 다마스 - 1 (0) | 2017.09.28 |
쌍용 최초의 승용차, 칼리스타 - 1 (0) | 2017.09.25 |
신불자장기렌트, 저신용장기렌트카 개인회생 파산면책자 가능 (0) | 2017.09.18 |
그 시절 젊은이들의 드림카, 스쿠프 - 3 (0) | 2017.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