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주영 회장의 뜻에 힘입은 현대정공 사장 정몽구는 

1989년 7월 4WD 고유모델 개발 추진을 결정한다. 

프로젝트명은 "M-CAR". 

마북리 연구소를 건립하고 현대자동차의 엔진과 국산화 부품을 활용해 

고유모델 개발에 힘을 쏟아 4WD 모델 시제품을 개발하였고, 

미국 업체의 도움으로 미국 시장에서 성능테스트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대 실패였다. 

갤로퍼 초기형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일반 승용차에 비해 차체 구조가 복잡하고 높은 강성과 품질이 요구되는 특성을 지녀 

설계가 까다로웠고, 미국 시장의 소비자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데다 

이미 지프 등의 기라성 같은 메이커들이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라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정몽구 사장은 고유모델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에 신뢰성 있는 메이커 업체의 4WD 모델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전략으로 급선회 한다. 

고유모델 개발만 고집하다가 시장에 제대로 진출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라이센스 모델 생산으로 완성차 시장 진출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신기술을 빨리 습득하여 배우면서 실력을 쌓자는 의미가 컸다.

미쓰비시 파제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여러 차종의 검토를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미쓰비시 자동차의 유명 4WD 모델인 

1세대 파제로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파제로가 4WD 모델로서는 상당히 명성이 큰 것도 있었지만, 

제작사인 미쓰비시 자동차가 이미 현대자동차와 다양한 분야에서 제휴를 맺어온 파트너였기에 

협업도 쉬울 것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 되었다. 

게다가 당시 1세대 파제로는 일본의 경제력향상에 따른 SUV붐을 타고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2세대 모델 개발에 착수하며 거듭나던 시점이었기에, 

미쓰비시 자동차 입장에서 구형이 된 1세대 파제로의 기술을 현대정공에 넘겨도 

해가 될 일은 아니었다. 


1989년 10월에 양사는 사업 추진 의향서를 교환하고, 1990년 3월에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한다. 

갤로퍼 1호차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91년 9월 16일 갤로퍼 1호 차량을 생산하고 

그 다음주인 25일에 외부에 최초로 공개하여 10월부터 출고가 시작되었다. 

디젤 롱바디를 먼저 선보이고, 

11월에는 자동변속기 모델, 12월에는 터보 디젤엔진 롱바디 모델이 출시되었다.


출시 당해인 1991년에 약 3개월 동안만 무려 3000 여 대 가까이 판매를 기록하며 

쌍용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만 생산하던 4WD 시장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인 1992년에는 총 2만 4천 여 대가 판매되면서 

국내 4WD 시장의 52%를 차지하며 순식간에 장악을 해 버렸다. 

Posted by 그대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