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차는 양산차의 구조도,
일반 도로주행용의 구조도 아니다.
중앙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서킷에서 레코드라인을
운전자가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한 결과물.
1인승으로 만들려다 좌우 임시 시트 한 개씩 추가… 정도로 보면 좋다.
중앙선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에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할 때는
일반 차량보다 전방 시야가 훨씬 나쁘다.
이런 차를 공도용으로 계속 만들어 낼 수는 없고,
동승자에 대한 배려문제도 있고,
승객을 양 옆에 태웠을 때 운전자가 가운데에 끼여서 미칠 듯이 답답한 문제와
좌우의 시선 등... 이런 식으로 계속 출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개발 당시 맥라렌 포뮬러원 팀은 혼다와 엔진공급 계약을 맺고 있었고,
제작진들 또한 혼다제 엔진을 희망하였다.
허나 혼다에 문의를 하니 맥라렌이 원하는 엔진 제공이 곤란하다고 해서
결국 BMW M Sport의 폴 로쉐가 850csi에 들어간 S70 엔진에
DOHC헤드를 올리고 배기량을 6.1L로 증가시켜 개조한
BMW의 S70/2 엔진을 제작했고 이를 공급받아 사용하게 되었다.
독립 12스로틀과 흡배기 가변타이밍 캠축(더블바노스)를 적용하여
연비가 기존의 850csi와 비교할수없을정도로 나빠진대신에
627마력을 발휘하고,
드라이섬프를 채택하여 엔진 장착위치를 낮출 수 있었다.
고든 머레이는 개발사상부터 맥라렌 F1을 레이스카로 활용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설계와 세팅 자체가 일상생활 용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걸 다시 레이스 세팅으로 돌린다는 것은 원래 목적에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라렌 F1의 어마무지한 포텐셜에 주목한 많은 사람들이
계속 고든 머레이를 꾹꾹 찔러댔고,
결국 고든 머레이는 "아몰랑 니들 맘대로 해" 하는 식으로 반쯤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LM을 베이스로 하여 28대의 GTR버전,
이중 10대는 리어를 연장한 롱테일 버전으로 생산되었다.
1995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멕라렌 F1 GTR이 종합우승을 비롯,
3,4,5위를 차지한데 이어
BPR시리즈에서 1995년부터 2년 연속으로 제패했고,
1997년부터 BPR시리즈를 이어받은 FIA GT클래스에서도 두각을 보이며
포르쉐 911 GT1, 메르세데스-벤츠 CLK GTR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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