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소개할 차는 폭스바겐의 비틀이다.


독일 폭스바겐의 상징적인 소형 자동차. 


참고로 비틀은 영어식 표현이고, 

현지 독일에서는 "Käfer(케퍼)"라고 부른다.

폭스바겐 비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30년대 독일의 지배자인 아돌프 히틀러는 국민차 계획을 세웠고, 

이를 공학박사 페르디난트 포르셰에게 의뢰하였는데,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독일 제국 노동부 KdF 프로그램(Kraft durch Freude. 즐거움을 통한 힘)의 

   일반적인 가족 단위에 맞춰 성인 2명과 어린이 3명을 태울 수 있을 것.

2. 100 km/h로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는 차일 것.

3. 가격은 1,000 마르크로 저렴하고 튼튼한 차를 만들 것.

4. RR을 적용하되, 독일의 가혹한 겨울 환경을 고려하여 공랭 엔진을 탑재할 것.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27px-VW_Typ_83_vr.jpg

나머지는 둘째 치고 당시 저 정도 비용이면 오토바이나 만들 정도의 비용이어서 

개발이 불가능해 보였으나,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이웃나라 체코의 타트라에서 생산하던 T97이라는 차량의 

구동계 레이아웃과 엔진설계를 그대로 베껴서 해냈다.

어쨌든 완성된 최초의 비틀은 1938년에 KdF Wagen이라는 명칭을 달고 출시됐으며, 

시제차들은 총통 아돌프 히틀러와 노동부 장관 로베르트 라이 박사 등 

나치정부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졌다. 


히틀러는 KdF-Wagen을 마음에 들어해서 자주 사열차로 이용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비틀은 흔히 악마와 천재의 합작품이라고 불리운다. 

지금까지도 명맥이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장수만세 브랜드.


Type 1 (1938~2003)


포르셰 박사가 개발한 Type 1

오리지널 비틀은 수평대향식 엔진을 장착한 RR 구동계였다. 

승용차가 RR 구동계인 경우는 피아트 500도 있는데, 

FR구동계인 포드 모델 T덕택에 FR이 대세였던 1930년대 승용차 시장을 생각해볼 때, 

독일이 이런 RR 형식을 국민차에 도입되어 의외라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폭스바겐 비틀 type 1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사실 히틀러의 의중에는 군사용도적 측면도 있었다.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 후륜부에 엔진을 두고 앞 보넷에 트렁크공간을 두어 

유사시에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장갑차로 운용하려 한 것이다. 

폭스바겐 골프와 같은 플랫폼을 쓰는 뉴비틀과 더비틀은 전륜구동으로 바뀌게 된다. 

참고로 FF구동계가 대중화된 건 1959년 미니부터다. 

Posted by 그대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