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인간의 능력을 초월해버린 그룹 B는 결국 이 두 건의 사고로 말미암아 
86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랠리에서 퇴출되었고, 
1987년 르망 24시에서도 그룹 B 폐지를 발표하며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사라졌다. 
87년 시즌부터 호몰로게이션 취득 기준을 5천대로 올리고 
각종 안전규정과 개조 제한규정을 둔 그룹 A를 채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WRC에서 쫓겨나버린 그룹 B는 랠리 크로스로 무대를 옮겨 활동하다가 사라졌다. 
스포츠카는 이후 그랜드 투어러라는 이름으로 부활했지만, 랠리에는 발을 딛지 못했다.

그래도 인터넷 여기저기엔 그룹 B를 그리워 하는 양덕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도로 안까지 들어온 구경꾼이 멍청이들"이라는 이론을 고수하며, 
출력이 그룹 B에 비하면 심영이 되어버린 현재의 WRC를 못마땅해 한다. 
이들은 현재의 WRC를 그룹 B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라 비하하지만, 
실제로는 기술의 발전과 드라이버 기량의 상향 평준화로 
같은 구간 기록을 비교해보면 현재 WRC 경주차가 그룹 B 시절의 기록보다 훨씬 빠르다. 
출력은 떨어졌지만 전체적인 경기 페이스와 코너링 스피드는 비교할 수 없이 올라갔다. 


최근 랠리카와 비교하자면 트랜스미션부터 다르다. 
당시는 수동 5단 H패턴이었으나 현재 WRC카는 시퀀셜 자동화 수동 변속기다. 
또 최대 토크는 WRC카가 더욱 높으며, 
전자 제어 디퍼런셜은 그룹 B의 원시적인 기계식 리미티드 슬립 디퍼런셜(LSD)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룹B가 우월한 점이 있다면 최대출력과 똘끼밖에 없으니, 
코너링이 많은 코스에는 현세대 WRC 차량이 훨씬 우월하다.
출력이 아무리 높아도 다른 것이 받쳐주지 못하면 헛일이 되므로, 
전체 성능은 요즘의 비개조 부문 차보다도 못하다. 
아니, 30년 전 차들과 현재 차를 비교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현대 스포츠는 관중들의 재미를 위해서 선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그룹 B의 관뚜껑에 못질을 해버린 란치아 델타 S4는 총 20대만 만들어젔으며 
현재는 10대 정도 남아있다고 추정된다. 
그룹 A의 규정에 맞추어 성능을 다운시킨 란치아 델타 HF 인티그랄레를 만들어 
WRC 그룹 A 클래스로 출전시켰는데, 
란치아 델타 HF 인티그랄레는 87년부터 내리 6년동안 WRC를 제패하며 
델타 S4와 다른 의미에서 전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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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이 좀 과한데.
(So much Power.)
- 유하 칸쿠넨


82년 WRC 최초의 풀타임 4WD 차량 아우디 콰트로가 투입된 것을 필두로 
83년 아우디 콰트로와 란치아 037이 본격적으로 챔피언 경쟁을 시작했다. 
84년에는 여기에 푸조 205 T16이 가세, 
85년 푸조가 매뉴팩처러즈 챔피언을 거머쥔다. 
아우디는 콰트로의 축간거리를 줄여 타막에서의 강렬한 언더스티어를 개선한 
스포트 콰트로를 준비했고 더이상 후륜구동으로는 승부가 어려운 란치아는 
86년 시즌부터 037을 대체할 새 모델을 제작하는데 그것이 그룹 B의 운명을 갈라버린 
전설의 차량 란치아 델타 S4이다.


란치아 델타 S4는 란치아 최초의 풀타임 4WD 랠리카이자 
890kg의 공차중량에 터보차져와 슈퍼차져를 동시에 장착하여 터보랙을 보완하였으며 
최고출력은 리미터 걸고 480마력. 
해제시 1000마력을 뛰어넘는 그 시대 다운 차량이었다. 
아우디는 여기에 맞서 스포르트 콰트로에 에어로파츠를 끼운 
스포르트 콰트로 S1을 86년 시즌에 투입했고 
푸조 205 T16과 포드 RS200, MG 메트로 6R4, 르노 5 터보, 시트로엥 Bx가 
운명의 86년 시즌을 시작했다.


문제는 3전 포르투갈 랠리에서 일어났다. 
컨트롤을 상실한 포드 RS200이 코스에 바짝 붙은 관중을 덮쳐 
3명이 사망하고 31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진 것. 
일단 이때까지는 그대로 시즌이 진행되었으나 운명의 5전 프랑스 Tour de Corse. 
병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드라이버 헨리 토이보넨이 
랠리에서 1승이라도 더 얻기 위해 프랑스 랠리를 그대로 강행하다가 
무리하게 세팅된 란치아 델타 S4가 코스를 이탈하며 절벽으로 추락해 폭발,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 모두가 불에 타버려 시체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참극이 벌어졌다. 
사고가 일어난 현장에는 자동차의 불타버린 섀시와 롤케이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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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C가 가장 주목 받던 시대를 꼽자면 80년대, 그 중 그룹 B를 들 수 있다. 
흔히 이 시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카레이서와 참가팀은 물론이고, 
주최자와 관중들까지 모두가 미쳐있었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FIA의 관리 부실과 메이커의 치열한 경쟁이 비극을 불렀다.


그때 갤러리들은 안전의식이 전혀 없어서, 
뒤가 미친듯이 흔들리는 차들을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근접해서 구경했다. 
차가 오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주요 길목을 사람들이 가득 매우고 있다가 
차가오면 좌우로 벌어져서 차가 겨우 지나갈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레이서들 또한 사람 사이를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질주했다. 
독일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발터 뢸의 신들린 주행을 찍은 온보드 캠이 유명하다. 
그 당시 레이서들의 심리적 부담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도 안 간다.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WRC는 그룹 4/그룹 2/그룹 1의 세 가지 클래스가 있었고, 
이중 최고봉이었던 그룹 4는 연산 400대만 가능하면 호몰로게이션 취득이 가능했다. 
특히 당시 우승을 휩슬던 란치아 스트라토스는 
이전의 랠리카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엔진은 6기통 페라리제 엔진을 사용하여 랠리계를 독점하였으며 
이에 FIA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메이커는 개조 규정을 더 풀어주기를 원했다. 
FIA 역시 스포츠카 레이싱과 랠리에 더 많은 메이커의 참전과 
더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 82년 숫자로 나눠진 모터스포츠 그룹을 개편하여 
그룹 A, B, C를 신설한다. 
알파벳이 뒤로 갈수록 출력도 크고 개조 범위도 넓었으며, 
그 중 WRC가 채택한 건 그룹 B.
이 그룹 B는 연산 200대만 되면 호몰로게이션 취득이 가능했고, 
차량 개조에 거의 제한을 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다 보니 공차중량 1톤 미만의 차체에 500마력을 넘나드는 엔진출력을 가진 괴물들이 
레이스에 투입되었는데, 
포장도로보다 접지력이 훨씬 떨어지는 비포장도로 에서도 평균시속 200km, 
제로백 3초 미만의 무시무시한 성능을 보였지만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컨트롤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미친 차량들의 시대가 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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