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부분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봉고는 포터에게 늘 밀려왔다.
그래도 엔진은 2012년 이전까지는 봉고가 포터보다 엔진이 더 고배기량 엔진을 사용해서
힘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것도 2012년에는 페이스리프트되면서 봉고 J 엔진에서 현대 엔진을 사용하게 되면서
봉고만의 장점이 사라졌다.
그래도 봉고가 포터보다 프레임, 서스펜션이 튼튼하고, 중량에 매우 강하다.
경쟁모델로는 현대 그레이스, 대우 바네트, 쌍용 이스타나가 있었다.
기아마스타 봉고 (BA2, 1981~1986)
봉고 코치
봉고 타운
3년차 선배인 현대 미니버스가 다 개척하지 못하고 떠난 RV의 길을 개척한 열혈 후배.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산 RV의 진정한 대선배.
1981년 8월에 봉고 트럭의 마이너체인지와 동시에 가지치기 모델로
당시 기아자동차(당시 사명은 기아산업)의 기술제휴 회사인
일본 마쓰다의 봉고 2세대 모델 승합차를 라이센스 도입해서 출시했다.
당시 5공정권이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를 발표하자 승용차를 생산할 수 없게 되어
경영난에 빠진 기아산업을 구원해 준 구세주이다.
덕분에 순수한 대한민국 모델이 아님에도 지금도 승합차 및 원박스카 계열의 차량은
죄다 봉고차로 불리고 있다.
캐치프레이즈인 "봉고끼리 만나면 인사해요♡"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보면 꽤 오글거릴수도 있는 광고지만
당시에는 봉고의 진가를 널리 알리고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해주었다고.
당시 기아자동차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구세주와 같았던 모델이었다고 한다.
봉고 트럭 모델이나 승합 모델은 모두 기존의 국산차 시장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트림으로,
개발 당시부터 '1톤짜리 조그만 트럭이 필요하냐',
혹은 '사람을 10명 내외나 태우는 미니버스 수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이냐'라는
회의론이 자주 있었다.
때문에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때문에 버스와 트럭만 생산할 수 있었으므로
승용차 생산 라인을 철수하고 대량의 직원 해고가 예정되어 있었던 기아자동차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식의,
그러나 그렇다고 무대포 방식의 기획도 아닌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봉고 시리즈가 실패하면 회사 자체가 없어질 판이었던 것.
한 마디로 기아산업에게 봉고의 런칭은 도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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