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에는 세계 최초로 250개 부품을 표준화해 부품 호환이 가능한 모델 S를 선보였고,
이 차는 1908년 영국왕립자동차클럽(RAC)으로부터 자동차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드와 트로피(The Dewar Trophy, 매년 뛰어난 성능과 기술력을 선보인 자동차 업체에게 상을 수여함)를 수상했다.
1909년 헨리 릴런드는 캐딜락을 제너럴 모터스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조건으로
캐딜락 오토모빌 컴퍼니를 제너럴 모터스에 매각했다.
1910년에는 지붕과 창문 일체형 바디의 자동차를 선보였고,
1912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자식 시동장치를 장착한 모델 30으로 두번째 드와 트로피를 수상했다.
1914년에 최초로 V타입 수랭식의 실린더 8개를 사용해 2,400RPM과 70마력의 성능을 낼 수 있는
'V8 엔진(V8 Engine)'을 발표했고 이 엔진은 1915년에 V8엔진의 실용화에 성공하고
대량생산 체제로 생산체제를 전환했다.
당시 인간을 다른 천체로 보낼 정도의 넘사벽의 호황을 누리던
천조국 미국의 경제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엘도라도의 모델 변경 주기이다.
엘도라도는 1953년에 1세대가 나왔는데, (당시 다른 미국차들의 유행처럼)
1954년 바로 2세대가 출시되고 모델 주기가 길어봐야 4년 정도의 주기의
모델 변경 주기를 가졌다.
특히 이때 GM을 이끌던 총괄 수석 디자이너인 할리 얼이 캐딜락의 디자인 전성기에 기여했고,
한때 야구계의 모 인사나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을 높게 평가하곤 했다.
특히 1959년식 캐딜락 라인업은 당대 최대 크기의 테일핀,
길면서도 낮고 넓은 차체, 분홍색 외장컬러 옵션이 잘 알려져
가장 잘 알려진 캐딜락 차종 중 하나가 되었다.
1950년에는 캐딜락이 르망 24시에 참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담당자였던 브릭스 커닝햄은 시리즈 61 쿠페를 바탕으로 제작된 차체에
캐딜락의 새로운 160마력 OHV 331ci V8 엔진을 탑재하여 참가했었는데
당시 섀시는 Frick-Tappett Motors가 포드 차량을 바탕으로 제작하여
Fordillac(포딜락)이라고 불렸다.
이 차를 보고 당시 프랑스인들이 Le Monstre라는 별칭을 붙여 유명해졌다.
캐딜락의 Le Mans 1950은 당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캐딜락이 실제 스포츠카 레이스에 어울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 주행이었다.
결과적으로 르망 24시에서 순정 캐딜락이 10위,
Le Monstre가 모래밭에 주행 실수로 빠져 순위를 잃어 11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탈것들에 대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일 쇼크 이후의 몰락, 캐딜락 - 4 (0) | 2023.03.02 |
---|---|
화려하고도 화려했던 엘도라도, 캐딜락 - 3 (0) | 2023.02.28 |
또 다른 미국의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 - 1 (0) | 2023.02.24 |
마지막 이야기, 링컨 에비에이터 - 6 (0) | 2023.02.23 |
대기 수용와 각 세대별 국내 판매, 링컨 에비에이터 - 5 (0) | 2023.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