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냉각을 위한 리어쪽의 V 덕트도 매우 공격적으로 디자인 되어 
프론트와 리어의 패키징이 일반 상용차라기 보단 
과거 GT1 시절처럼 프로토타입 GT카를 호몰로게이션용으로 만들었단 인상을 줄 정도.

여담으로 Forza Motorsport 6의 트레일러 영상에 등장했다.


최근 이 2세대를 가지고 르망 이전에 전초전 격으로 
데이토나에서 열린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했지만 
1위 달성에도 불구하고 기어박스, 타이어, 브레이크 등 온갖 데서 터진 트러블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어째 1세대나 2세대나 경기 실력이...? 
WEC에도 2016년 부터 참가하게 되었는데 
1전인 실버스톤에서는 숏런, 롱런 둘 다 기대 이하의 모습만 보여줬다.
페라리는 커녕 애스턴 마틴에게도 밀리는 처참한 모습만 보여줘 
팬들에게 실망만 안겨줬다. 

게다가 르망24시에선 페라리, 애스턴 마틴도 쳐바르는 콜벳이라는 
막강한 자국 라이벌이 기다리고 있어서 아무래도 레이스에선...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2016 르망에서 포드 GT가 GTE 클래스 1, 3위를 차지했다. 
2년전 포르쉐가 복귀하고 이듬해부터 왕좌를 차지한것과 같이 
그야말로 전설의 귀환이라는 뜨거운 반응을 보였지만 
불과 6분을 남겨놓고 벌어진 LMP1에서 토요타의 불운에 밀려난 이슈가 되어버렸다. 

데이토나 레이스에서의 결과를 가지고 약간의 조정을 거친 후 
나온 좋은 결과라 결국 데이토나 24시간 경기는 연습에 불과했다. 
참고로 같은 미국 워크스팀이자 강팀인 콜벳은 리타이어라는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초도생산분 500대의 주문이 완료되었다. 
가격은 6억6552만원. 
아닌게 아니라 저 돈이면 아우디 R8 뿐만 아니라 벤틀리 뮬산,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롤스로이스 팬텀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의 가격은 생산자가 결정하는 것이고 
그걸 합당한 가치로서 받아들일 지의 여부는 구매자의 몫이며, 
포드 GT가 이름이 상대적으로 아벤타도르나 베를리네타보다 덜 알려졌을 뿐이지, 
전체적인 스펙과 서킷에서의 성능을 보자면 그렇게까지 비싼 가격도 아니다. 
애초에 콜벳이나 R8, GT-R 같은 성격의 차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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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슬로건은 "좋은 차, 빠른 차, 최고의 차"(Good car, Fast car, Best car). 
"빠름"에 집착하는 회사답게 12기통 고성능 라인엔 "Speed"라는 모델명이 붙는다. 
실제로 모터스포츠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기술력도 굉장한 브랜드다.


아이러니한 건 과거 오랫동안 롤스로이스에게 인수되어 계열사이자 
휘하의 수공 브랜드로 지내 왔다는 것. 
당시 벤틀리는 자사의 대형 고급차인 8리터 라는 차를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대차게 말아먹었는데, 
시기를 잘 보면 8리터가 얼마 못 팔고 단종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 


그 차는 1930년 런던에서 그 당시 돈으로 무려 5500만원의 거액의 가격에 판매되었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당시 유럽은 경제 대공황의 한파가 몰아치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1930년에서 1932년 까지 불과 100대 생산에 78대만 팔리는 
처참한 판매량을 기록하였고, 
그 여파로 벤틀리는 처절하게 폭망하며 결국 롤스로이스에 인수되고 만 것이다. 
이렇듯 8리터는 벤틀리 멸망의 주범이었지만, 
이와 별개로 오늘 날에는 역대 벤틀리 모델들 중의 가장 뛰어난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아무튼 롤스로이스의 제자이자 부하가 된 1931년부터 1997년까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롤스로이스-벤틀리" 라는 그룹으로 불렸고,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의 마개조팩 또는 롤스로이스의 변종으로만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의 벤틀리가 롤스로이스와 다른 점은 
고작 내장 시트 색상 등과 라디에이터 그릴, 훨씬 빠른 주행성능 등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모기업 롤스로이스의 그늘에 가려 롤스로이스의 세단과 
컨버터블을 스포츠 튜닝 형태로 개조한 차량들만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만들고 싶던 차를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 

이때의 벤틀리의 모습은 마치 메르세데스-벤츠의 AMG나 BMW의 M버전과 비슷한 실정이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롤스로이스를 BMW가 인수하고, 
벤틀리는 폭스바겐이 인수하고 나서 다시끔 초심으로 돌아가 명성을 찾는 중. 
롤스로이스가 운전수(쇼퍼)에게 자주 운전을 맡기는 쇼퍼 드리븐 성향이 강하다면 
벤틀리는 오너가 직접 운전하는 오너 드리븐 성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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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추앙받는 드라이버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알파로메오 팀 소속으로 데뷔했다. 

비록 데뷔 초에는 주세페 파리나와 같은 라이벌에 가렸지만, 

이후 마세라티에 가서 총 5번의 챔피언을 탔다.

후안 마누엘 판지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후 철수했다가 1970년대, 1980년대에 워크스 팀으로 복귀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1985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최근 f1 복귀를 선언했다


줄리아도 레이싱 팬들은 알아주는 모델.

알파로메오 줄리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또한 1990년대 주력 모델이었던 155로 DTM에 참가해 

벤츠나 BMW를 상대로 뉘르부르크링에서 우승하는 등 

독일 브랜드를 상대로 이탈리안 파워를 뽐내던 시절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 참가한 WTCC 156. 

이 때도 동급 세그먼트를 상대로 무쌍을 찍었다. 


알파로메오 레이싱을 상징하는 콰드리폴리오(Quadrifoglio) 뱃지. 

알파로메오에서 출시하는 모델 중 고성능을 표방하는 모델에 빠짐없이 붙는 뱃지이기도 하다.

콰트로 폴리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처럼 알파로메오는 모터스포츠에서 캐릭터가 확실하고 

특유의 작은 차체에서 나오는 고성능과 매력적인 디자인까지 더해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페라리도 그러한 팬들을 티포시라 부르는데 알파로메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피스티라고 부른다. 

이렇게 지금은 이제야 부활의 날개짓을 시작한 브랜드지만 

그런 부활을 바라는 팬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직접적인 참가는 아니지만 2018년 시즌에 자우버 F1 팀에 스폰서로 후원해주고 있다.


앞으로으 전세계적인 부활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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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0년에 세르지오 마치오네 회장 자신이 직접 한국에 

알파로메오를 진출시킬 의사를 피아트 한국지사장인 안용석을 통해 전달했다. 

2011년 서울 오토쇼에 알파로메오를 출전시킬 예정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무산. 

2016년부터 대한민국 정식 수입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지만 2017년에서 2018년경으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저거는 본사 직원이 FCA 소속 직원에게 교육 후 들려 준 이야기다. 

아마 새롭게 다시 시작한 알파로메오 브랜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한국 진출은 확실해 보인다.

세르지오 마치오네 회장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리고 2017년 10월, 알파로메오의 한국 진출이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FCA 그룹은 한국에서 부진한 피아트와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철수하고 

지프에 집중하고, 2018년 하반기쯤 알파로메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르지오 마치오네 회장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여담으로 한국인들한테는 은근 호불호가 갈리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아직 대한민국 땅을 제대로 밟아 보지 않은 브랜드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성능이나 브랜드 가치를 떠나 앞의 삼각형 그릴이 

한국인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게 되는게 주된 이유다. 

이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쁘다 하지만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들은 ○▽○ 같이 보이는 

귀여운 디자인이 우스꽝스럽다고 많이 깐다. 

단지 디자인이라기 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세르지오 마치오네 회장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지금은 참가중인 메이저급 모터스포츠가 없지만 

모터스포츠 태동기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성적을 냈었다. 

페라리 만큼이나 레이싱에 잔뼈가 굵은 브랜드이다. 

그 유명한 페라리가 사실상 알파로메오의 품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탈리안 레이싱 DNA의 시초라 할 수 있다.


F1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그랑프리 레이싱 때부터 참가했던 F1의 큰형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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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스포티한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하체의 세팅을 엑셀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던지라 

코너링에서는 그냥 일반 승용차 수준이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튜닝 및 모터스포츠에서 쓸만한 차가 매우 제한적이었는지라 

스쿠프가 이 영역을 사실상 독점하였다.


1992년 6월에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스쿠프를 출시하였다. 

Y2 쏘나타와 가까운 형상의 유선형으로 디자인을 매만졌으며, 

고급형, 고급형 터보, LS, LS 터보 등 네 가지 트림으로 나왔다. 

스쿠프는 1995년 6월까지 생산되었으며, 

이후 1996년 4월에 아반떼(J2)를 베이스로 한 현대 티뷰론에게 자리를 물려면서 단종되었다.

스쿠프 레이싱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스포츠카 논란이 어찌되었든간에 한국 레이스의 역사에 

스쿠프가 중요한 한 획을 그었음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티뷰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국내 모터스포츠 투어링 A, 투어링 B, 원메이커 현대 3개 클래스 

모두를 스쿠프가 점령했을 정도.

국산차중에 대항마는 투어링 A 클래스에서 중형차인 콩코드뿐으로, 

스쿠프는 콩코드보다 엔진 마력은 딸렸지만, 

뛰어난 효율성과 가벼운 차체를 장기로 버텼다.

해외 스쿠프 레이싱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게다가 온로드 서킷으로 주구장창 쓰던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는 

전체 2.125km중 스트레이트는 400m뿐이고 

나머지는 코너와 헤어핀들로 채워져서 관광태울만한 격차가 아니라면 

엔진의 출력을 발휘하는데에 제약이 큰 전형적인 테크니컬 코스라는 점도 한 몫을 했다.


의외로 현대가 네임벨류가 거의 없던 그 시절에도 스쿠프는 

해외 모터 스포츠 경기에서 상당히 자주 눈에 띄며 활약을 펼쳤는데, 

스쿠프 플랫폼의 원조인 미쓰비시 미라지가 모터스포츠에서 상당한 성적과 인기를 끈 덕분에, 

미라지 용으로 출시된 다수의 하체 튜닝 부품들이 

약간의 개조만 거치면 바로 스쿠프에 사용이 가능했기에 미라지 보다는 

좀더 스포츠카 같이 생긴 스쿠프가 미라지 대신 선택을 받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파이크스 피크 힐 스쿠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한국사람들에게도 알려진 스쿠프의 해외 모터스포츠 활동중 가장 유명한 경기는 

1992년 미국 파이크스 피크 힐 랠리에서의 최고 신기록 우승이다. 

이 차량은 울산공장 홍보관에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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