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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2.01 정주영 회장과 갤로퍼, 갤로퍼 - 6
  2. 2017.11.24 현대 SUV의 시초, 갤로퍼 - 1

여담으로 정주영 회장의 갤로퍼 사랑이 각별해서 

정주영 회장이 운영하는 충남 서산 농장에서 갤로퍼를 개인 차량으로 공수해 와서 

직접 운전하고 다녔을 정도다.


정주영 회장의 서산 농장 자가용은 갤로퍼의 초기 모델은 아니고 

1994년에 페이스리프트 된 뉴 갤로퍼 모델로, 

서산 농장 숙소에는 정주영 회장이 타고 다니던 갤로퍼 차량이 아직까지 있다고 한다. 

정주영 갤로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또한 북한군이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 갤로퍼를 군용 지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1992년 갤로퍼 출시 1주년을 맞이하여 방영하였던 광고로, 

세계 여행가로 유명한 故 김찬삼 세종대 명예교수가 실제로 갤로퍼 자동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질주하는 형식의 광고였다. 

그 당시 김찬삼 교수는 6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88일간의 대장정을 완수했으며, 

그 여정에 따라 총 5편으로 나뉘어 방영하였다. 

부제는 가자, 해를 따라 서쪽으로.


1994년 유라시아 대장정에 이어 방영되었던 갤로퍼 2번째 대장정 광고. 

이번에는 고구려를 소재로 하여서 중국 북부 고구려 지대 지역을 질주하는 형식의 광고였다. 

총 5편으로 나뉘어 방영하였다. 

부제는 가자! 고구려

갤로퍼 가자! 고구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갤로퍼는 기존 4WD 차량의 투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급화된 이미지를 통해 

기존 SUV 차량의 총 판매량을 늘리는데 기여하지만 곧이어 강력한 경쟁자인 

1993년 7월 기아자동차에서 스포티지를 출시하고 

같은 해 8월 쌍용자동차에서는 무쏘를 출시하며 위기를 맞는다. 


이에 방어 전략을 취하고자 현대정공에서는 1994년 페이스 리프트를 통해 

뉴 갤로퍼 및 인터쿨러 모델을 출시하고 

1997년에는 갤로퍼 2를 출시한다. 

방어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어가, 

무려 9년동안이나 4륜구동 R/V 판매량 1위를 유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갤로퍼2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전성기 시절의 갤로퍼의 라인업은 무려 40개 가까이 되는데, 

이는 무쏘와 스포티지, 레토나와 코란도의 라인업을 전부 합쳐도 갤로퍼가 더 많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현대정공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4륜 구동 차량 제작 사업 부문을 현대자동차에 넘겨 주게 되고, 

철도 차량 제작 사업 부문은 로템으로 이관시켜 

자동차 전장 부품 전문 기업체인 오늘날의 현대모비스로 탈바꿈하게 되며, 

1999년부터는 갤로퍼 라인업 제작을 현대자동차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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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소개할 차는 현대 자동차의 SUV의 시초 갤로퍼이다.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에서 1991년 10월부터 2004년 1월까지 생산했던 

프레임 타입 4WD SUV 자동차이다. 

쌍용의 초기 코란도와 더불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오프로드의 명장이다.

갤로퍼의 어원인 갤럽(gallop)은 말 따위의 동물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현대 갤로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제5공화국 시절에 내려졌던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1987년에 해제되면서 

당시 항공기, 철도차량, 공작기계 등 기계산업 분야 주력하던 현대정공에서 

기계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 제작 사업에도 진출을 시작 하여 

종합 기계 메이커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당시는 1988 서울 올림픽의 영향으로 3저 호황을 누리며 국민 삶의 질도 향상되어 

레저 붐이 일어나던 시기로, 

4WD SUV 차량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어 

4WD 모델을 중심으로 제작하는 사업을 계획했는데, 

당시에 마침 같은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4WD 모델 제작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 없어 

계열사 간의 사업 영역 충돌도 없던 덕에, 

정주영 회장이 현대정공의 4륜구동 사업 진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현대 갤로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근데 현대자동차 한 곳에 자동차 제작 사업을 집중하는게 절차상으로도 훨씬 간단하고 

그룹 차원에서도 효율성이 더 좋을텐데, 

정주형 회장이 굳이 현대정공에 자동차 제작 사업 일부를 별도로 신규 지원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198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현대자동차가 지금의 정몽구 회장 체제가 아닌 

정주영 회장의 동생이자 현대자동차의 초기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정세영 회장 체제가 굳건하던 시기였고, 

정몽구와 정세영 일가와의 현대자동차 후계구도에 대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현대정공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자 당시 그룹 총수였던 정주영 회장 입장에서 본다면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의 그룹 주요 사업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동안 고생해서 현대자동차의 창립과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친동생 정세영을 

의리없이 단칼에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현대자동차와 비슷한 계통으로 항공, 철도차량, 공작기계, 자동차 부품등의 사업분야를 가진 

기계산업 부문 종합 메이커였던 현대정공을 아들 정몽구에게 맡기고 있었고, 

때마침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된 덕분에 현대자동차가 아직 진출하지 않았던

4WD 및 SUV 자동차 제작사업을 일부러 현대정공 쪽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하여 

친동생 정세영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는 선에서 나름 현명하게 

아들 정몽구에게 현대자동차 후계 구도의 기회를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Posted by 그대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