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차를 더 많이 팔기 위해 모터 스포츠를 하고자 하는 포드와 
모터 스포츠를 위해 차를 만들어 파는 페라리의 생각은 너무나 달랐다. 
페라리는 포드에 회사를 매각한 후에도 모터 스포츠 분야를 포드의 간섭 없이 운영하기를 원했으나 
포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페라리는 이번 기회에 인디 500까지 페라리가 제패하길 원했고 
이는 포드 입장에서는 혹을 떼려다 혹을 더 붙이는 꼴이 되기에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서로 노림수가 달랐기에 인수 협상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고, 
엔초 페라리의 일방적인 통보로 협상은 물건너 가고 말았다. 


협상이 파토난 배경에는 엔초 페라리 이하 페라리측의 
'미국 놈들이 모터 스포츠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라는 부심도 어느 정도 자리하고 있다. 
대신 페라리는 이탈리아 내부에서 투자자를 찾았고, 
최종적으로 피아트의 산하로 인수된다. 
페라리에 대한 인수 협상 과정에서의 실사 등으로 시간과 돈을 적지 않게 낭비한 포드 입장에서 
일방적인 협상 결렬 선언은 페라리 놈들은 우리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 자체였고
그 때부터 포드의 목적은 타도 페라리로 바뀌게 된다.


마음은 독하게 먹었지만 기술이 없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기에 
포드는 또 다른 모터 스포츠의 선진국인 영국에 연구 조직인 
포드 어드밴스드 비클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영국의 모터 스포츠 기업들과 접촉했다. 
그 가운데 포드가 선택한 것은 롤라였다. 
롤라는 F1을 비롯한 모터 스포츠 차량을 만들던 신생 기업이었는데, 
이 회사에서 포드 엔진을 얹어 만든 Mk.6가 최종적으로 선택되었고, 
롤라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최고경영자였던 에릭 브로들리를 비롯한 
일부 엔지니어가 개인적으로 포드와 계약하여 협력하기로 하여 
Mk.6를 기반으로 신차를 개발하기로 했다. 


그 결과 1964년 3월에 최초 모델인 포드 GT40 Mk. I이 일반 공개를 하였다. 
GT40라는 이름은 언론에서 붙인 별칭으로 
차고가 40인치 남짓이라 붙은 것. 
포드 내부의 명칭은 그냥 포드 GT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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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트랙터로 번 돈으로 고급차를 여러 대 구입해 몰고 다녔고, 
이 중 페라리의 250GT가 있었다. 
차 자체는 괜찮았으나 클러치가 계속 오작동을 하는 것을 발견한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차를 분해해보았고, 
그 결과 람보르기니에서 생산하던 한낱 트랙터와 
최고급 페라리에 사용한 클러치가 같은 제품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엔초 페라리를 직접 만나 
자신이 발견한 클러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페라리 본사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엔초 페라리를 만난 페루초 람보르기니였지만, 
당시 모터스포츠에서 연승을 거두어 자만하던 엔초 페라리는 
그의 면전에 대고 "댁같은 사람은 트랙터 모는 법이나 알면 됐고, 
내 차는 당신 분수에 안 맞으니 나가라."는 투로 대꾸하고 그대로 내쫒았다고 한다. 


그의 말은 페루초 람보르기니의 불 같은 성격에 기름을 부었고 
그 말에 화가 난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제대로된 스포츠카를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이후 1963년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스포츠카 공장을 신설하고 
첫 번째 차량 350GT를 생산했다. 
1966년 람보르기니는 세계 최초의 슈퍼카라 할수있는 미우라를 발표했다. 
이 차는 리어 미드십 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자동차였다. 
본디 빠르기만 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차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미우라의 성공으로 마음이 바뀌었는지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미우라의 뒤를 이을 강력한 신차를 계획했다. 


하지만 신차의 탄생을 지켜보기 전 그는 트랙터 사업의 재정난과 
석유파동으로 1972년 회사를 매각해야했다.

2년 후인 1974년 페루초 람보르기니가 꿈꿨던 자동차인 쿤타치를 내놓았고 
유명한 시저 도어도 이때 첫선을 보였다. 
당시에는 이미 스포츠카 사업에서 손을 뗀 그였지만 
그래도 생전에 자신이 설립한 회사 제품이라고 쿤타치를 즐겨 타고 다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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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소개할 메이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알파로메오이다.


자동차계의 전설

페라리의 스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lfa_Romeo_logo.png

피아트 계열의 자동차 제조 업체이다.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 밀라노에 본사가 존재하며, 

1910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도 건재한 기업이다. 

현재는 피아트 그룹의 산하 기업으로 스포츠성을 내세운 차량들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탑기어의 전 MC 3인방이 모두 좋아하는 브랜드다.

알파로메오 탑기어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부가티처럼 특이한 모양새의 그릴이 특징이며, 

마치 웃는 듯한 역삼각형 방패 모양이다.(0▽0) 

기통수도 적고 배기량도 낮은 엔진이지만, 배기음이 걸작이다. 

그 배기음으로 유명한 마세라티와 맞먹을 정도.


고성능 모델이 콰드리폴리오 베르데(Quadrifoglio Verde. 영어로 클로버리프) 버전이며, 

앞 펜더에 네잎클로버 엠블럼을 박아넣는 전통이 있다.


엠블럼 속의 붉은 십자가는 밀라노의 상징이며, 

그 옆에 있는 것은 14세기 밀라노를 지배한 비스콘티(Visconti) 가문의 문장인 

"Biscione", 즉 왕관을 쓴 구렁이가 무어인을 삼키는 모습의 그림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 로고는 2015년 줄리아(Giulia) 발표 때 새로 디자인해 발표된 것이며, 

이전 로고와 색 배치 차이가 있다.

알파로메오 엠블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10년 6월 24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알렉산더 다라크, 우고 스텔라에 의해 

알파 로메오가 설립되었다. 

다만 처음에는 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 즉 A.L.F.A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는데, 

이 이름이 현재의 알파 로메오가 된 계기는 1915년 니콜라 로메오가 

회사를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1910년에 24 HP를 만들기를 시작으로, 

점점 엔진의 출력을 높여 가 40, 60 HP 모델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1년, 알파 로메오가 성공하는 계기가 된 모터레이싱에 진출한다. 

처음에는 24 HP 2대의 모델로 시작했고, 1914년에는 레이싱용 자동차를 만들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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