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은 오늘날 더 이상 BMW 등 독일 브랜드와의 경쟁을 외치고 있지 않다. 
그들은 120년에 달하는 자신들의 역사를 드디어 제대로 활용해 볼 생각인 것이다. 
가격만 300,000달러를 넘긴 캐딜락 역사상 최고가 차량, 
셀레스틱이 앞장선다. 
온갖 호화스러운 소재로 '수재'로 만들어지는 셀레스틱은 
캐딜락과 이전에 경쟁하던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등과 
다시금 동등한 선상에서 비교되는 것을 노리고 있다. 
차량의 부품 곳곳에 캐딜락의 옛 슬로건 'The standard of the world'를 다시 새겨넣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 
2024년 이후로 에스컬레이드 등의 모델도 전동화할 계획이며, 
전기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제공해나갈 예정이다.


캐딜락은 2000년대 이후 모터스포츠 부문에도 과감히 투자하고 있는데, 
미국 데이토나 24시, 세브링 12시와 2023년 르망 24시 재참가를 목표로 
LMDh 클래스에 참가할 캐딜락 V-LMDh 개발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 및 개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3년부터 모기업 제너럴 모터스가 포뮬러 1에 참가하기 위해 
안드레티 글로벌과 파트너십을 이뤄 2026년까지 F1 참가를 위해 
캐딜락을 대표로 하여 협력한다고 한다.
FIA가 참가 진행을 승인하면 안드레티 캐딜락(Andretti Cadillac)으로 팀명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며 
미국 브랜드 팀 답게 미국에 기반 시설을 두고 영국에 지원 팩토리 시설을 추가로 설립하여 
참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F1의 인기가 나날이 급상승되고 있고 
당장 이번 포뮬러 1/2023시즌에 미국 GP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3번이나 개최될 예정이다. 
때문에 현재 캐딜락 외에도 다른 미국 브랜드인 포드가 
레드불 레이싱과 파트너십 맺기를 원한다는 루머가 계속 들리고 있다.


캐딜락 엠블렘, 일명 약장로고를 오랫동안 적용하여 전통을 자랑하지만, 
엠블럼이 워낙 자주 변경되는 편이다. 
공식적으로 거의 30여 차례 크고 작은 수정을 거쳤다. 
엠블럼의 유래는 위의 역사 항목에서 서술했듯이 캐딜락 가문의 문장을 차용한 것이다.

Posted by 그대옆에

2016년 11월, 캐딜락 DPi-V.R을 공개하여 미국 내구 레이스 프로토타입 클래스에 참가하였다. 
LMP2 클래스인 달라라 P217 바탕으로 개발되었으며 
이전의 노스스타 LMP와 콜벳 데이토나 프로토타입을 잇는 후계 레이스 카로 나섰다. 
데이토나 24시와, 세브링 12시 등 롱비치, 미드 오하이오, 로드 애틀랜타에서 
다수의 우승을 거두는 등, 여러 성과를 올렸다.


2018년 중반 캐딜락의 새로운 Alpha-Numeric 명명 체계를 따라, 
CTS는 2019년 상반기에 CT5로 거듭나며, 
ATS는 같은 시기에 CT4로 풀체인지 되었다. 
XTS는 2019년을 끝으로 후속 차종 없이 완전히 단종되었으며, 
XTS와 CT6 이후 개발 중인 캐딜락의 플래그십 모델은 
전통적인 4도어 세단이 아닌 다른 형태의 차종이 될 수 있다는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의 인터뷰가 있었다.


SUV, 크로스오버 라인업은 2018년에는 컴팩트 크로스오버 XT4, 
2019년에는 XT5의 길이를 늘여 3열 공간을 확보한 XT6을 추가하여 
라인업을 완성시켜 SUV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시장의 트렌드를 따르려는 계획이다. 
에스컬레이드는 2017년형 모델에 10단 변속기 장착 외에는 큰 변동 사항없이 
2019년까지 4세대 모델을 판매했으며 2020년에 5세대 모델을 선보였다.


2018년 4월, 요한 드 나이슨 캐딜락 사장이 퇴임했다. 
캐딜락의 사업차 판매를 줄이고 공격적인 태세로 마케팅을 해도 
기대만큼 브랜드가 살아나지 않았다는 게 이유라는 분석이 있다.
이후 스티브 칼라인 사장을 임명했으며 차근차근 캐딜락 브랜드의 대전환을 준비해나가는데...

다시 'Standard of the world'로 돌아오다 (2024~)


근 20년 동안 독일차를 따라잡으려 노력하던 캐딜락이 
사실은 오랫동안 칼을 갈고 있었다. 
요한 드 나이슨 사장 시절에도 기획 중이었던 캐딜락의 리브랜딩 프로젝트가 바로 그 칼이다. 
2022년, 급격한 전동화의 흐름 속에 캐딜락도 전동화를 외쳤고 
준비해놓은 두 자루의 칼을 빼들었다. 
리릭과 셀레스틱이 바로 그것이다. 
두 차량 모두 컨셉트카를 먼저 공개한지 얼마 안 되어 양산형 공개를 진행했는데, 
역대 어느 캐딜락 차량보다도 컨셉트카와 양산형 간의 괴리가 없었다는 것이 
대중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Posted by 그대옆에

첫 해 르망 24시에서는 4대가 참가하여 DNF나 20위 근처의 성적들을 거뒀으며 
두번째 해에는 DAMS 팀이 레이스를 운영해서 15위를, 
세번째 해에 다시 캐딜락이 운영을 맡아 9위, 12위를 받으며 
저조한 순위를 받은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르망 24시에 참가하지 않았다.


캐딜락의 라인업은 2010년대까지는 스포티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자신들이 주장한 방향성과는 다른 차인 DTS와 그 후속작 XTS, 
역대급 실패작 중 하나인 BLS와 같은 전륜구동 차종들이 꾸준히 출시되었다. 
특히 BLS는 '캐딜락의 새로운 방향성에 맞지도 않고 재미있는 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급의 차 중에서 최고도 아니다'는 혹평과 함께 단명했다. 
그래도 DTS나 XTS는 보수적인 장년, 노년층 고객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충족해서 
판매 실적은 괜찮다.


그렇지만 캐딜락은 CTS-V와 XLR-V를 시작으로 
BMW M, 메르세데스-AMG, 아우디 RS, 렉서스 F, 재규어 R과 같은 
고성능 디비전 캐딜락 V를 출범하여 고성능 스포티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스포티한 이미지가 아닌 CTS-V 쿠페와 ATS.V.R 등을 개수하여 
GT3급 레이스에 출전하여 수상하고 2세대 CTS-V로 
뉘르부르크링에서 순정 4도어 세단 최초로 랩타임 8분대의 벽을 깨고 
3세대 CTS-V로 고성능 고급 중형 세단 세계에서 600마력대의 시작을 알리는 등 
단순히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 실제 생산 차량과 모터스포츠에서도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2016년 7월 그룹 내 최상위 브랜드 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GM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캐딜락이, 
향후 계획을 발표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캐딜락의 세단 라인업 계획은 스포츠 세단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다. 
이전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 우베 엘링하우스나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이 ATS 아랫급을 후륜 기반으로 제작한다고 밝혔다가, 
전륜 기반으로 제작하겠다고 발표가 나는 등 이야기가 많았던 ATS 아랫급 차량은 
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날이 성장해가는 크로스오버/SUV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캐딜락에서 최종적으로 밝힌 공식적인 이유이지만, 
사실상 계륵에 가까운 체급의 모델이어서 출시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Posted by 그대옆에

그 이외에도 GM에서는 캐딜락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겠다고 
렌터카로 물량을 왕창 몰아주면서 중고차 가격과 브랜드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뻘짓을 링컨과 같이 밀어붙이고,
1980년대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4-6-8기통 변환 엔진을 장착하는 무리수를 두는 등, 
위에서 상술한 온갖 삽질로 인해 캐딜락은 고급차로서의 옛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모기업 GM의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에 
사람들은 캐딜락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Art & Science와 고성능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부활 (1999 ~ 2024)


캐딜락은 할아버지들의 바퀴 달린 쇼파라는 굴욕적인 평가, 
낮은 판매 실적, 실추된 브랜드 가치를 회복할 계획을 세웠다. 
1999년 북미국제오토쇼에 Evoq라는 컨셉카를 통해 
새로운 캐딜락의 디자인 랭귀지 Art & Science를 선포했다. 


캐딜락이 아트 앤 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인 초창기 디자인이 가장 과감했으며, 
최근의 디자인은 트렌드와 공기역학을 따라가서, 
초기의 각지고 날카로운 조형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의 조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독창성은 유지하면서 세련미를 더하고 있다. 
양산차에서는 1세대 CTS와 XLR부터 Art & Science가 적용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컨셉카 Evoq는 양산차 하드톱 컨버터블인 XLR에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다. 
또한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2002년에 발표된 미드십 스포츠 컨셉트 차량인 
시엔이 주인공 원본의 차량으로 등장하여, 경찰차를 따돌리는 등 나름 활약을 한다.


2000년도, 캐딜락은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궁극적으로는 르망 24시에 다시 참가하기 위해 
노스스타 LMP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당시 아우디, 크라이슬러, 포르쉐 등도 참가 중이었던 LMP900클레스에 참가하는데, 
이는 GM이 쉐보레 콜벳 프로토타입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위해 
관련 인력과 자금을 돌리기로 결정한 2002년까지 이뤄졌다. 
ALMS의 팩토리 팀으로 Riley & Scott 팀이 운영하도록 했고, 
유럽 스포츠 레이싱 월드 컵(European Sports Racing World Cup)에서는 
DAMS 팀이 LMP 운영을 맡았다.

Posted by 그대옆에

오일 쇼크 이후 계속되는 침체기 (1973 ~ 1998)

오일 쇼크 이후 캐딜락 역시 스빌이나 1977년식 드빌을 비롯해 
다운사이징을 모토로 한 차종을 제작하기는 했으나, 
쉐보레 카발리에를 배지 엔지니어링한 시마론은 역대급 망작으로 판정받고 쓸쓸히 퇴장했다. 
시마론은 GM J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플랫폼은 쉐보레와 뷰익, 올즈모빌, 폰티악, 오펠, 복스홀, 이스즈자동차 등 
정말 당시의 GM 브랜드라면 다 돌려썼다. 
그나마도 성능 같은 부분도 다른 형제차들과 차별화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더 발전한 제품으로 승부하지 않고 
비용절감으로 이윤을 내겠다는 GM의 재무부 출신 신규 경영진의 뜻을 충실히 따른 
총괄 수석디자이너 어빈 리비츠키의 지휘 아래, 
배지 엔지니어링을 남용하거나 모든 차에 FF 레이아웃을 도입하겠다는 
당시 GM의 무리수적인 정책에 의해, 
웅장한 후륜구동 레이아웃이나 이에 준하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버리고 
가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쓰는 등, 
가면 갈수록 캐딜락의 고유한 디자인 특징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나마 피닌파리나와 공동 제작한 알랑테 컨버터블이 예외이기는 했으나 
상업적으로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나머지 라인업은 폰티악이나 올즈모빌, 뷰익 차량들의 붕어빵에 불과해져갔다.


1991년에 등장한 10세대 엘도라도는 명가가 얼마나 처절하게 몰락했는지의 척도였다. 
지난 1세대부터 4세대까지의 화려함의 극치도 
5세대부터 이어온 고유의 디자인 헤리티지도 사라진, 
과도한 프론트 오버행과 구식의 차체 비례는, 
캐딜락이라는 브랜드와 그 대표작의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줬다. 
1980년대 중후반 GM의 전형적인 배지 엔지니어링 차종이었던 
9세대 엘도라도보다는 상황이 낫긴 했으나,
결국은 1990년대 RV 열풍에 밀려 판매부진에 시달리다 10세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1993년에는 전륜구동이었던 플래그십 대형 세단이었던 캐딜락 식스티 스페셜의 후속으로 
후륜구동 캐딜락 플리트우드 브로엄을 출시했으나, 
미국차 특유의 크게 떨어지는 연비+당시 캐딜락 브랜드의 이미지 악화가 겹쳐서 
판매량은 바닥을 기었고 결국 출시 3년만인 1996년에 단종되는 결과를 맞았다.

Posted by 그대옆에

더 이어서 1960년대에도 캐딜락은 여전히 전성시대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특히 1965년 출시된 5세대 엘도라도는 현재의 Art & Science 디자인 랭귀지에까지 내려오는 
캐딜락 디자인 헤리티지의 시작이 되는 기념비적 차종이며, 
얼의 후임인 빌 미첼이 1960년대의 GM 및 캐딜락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크롬 도금의 비중을 대폭 줄여 그릴과 범퍼처럼 중요한 곳에 
크롬 도금 사용을 집중시키는 등, 
유럽 스타일을 일부 응용하면서도 미국적인 대범함을 결합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이에 힘입어 캐딜락은 1966년에 판매량 60%가 늘어난 약 19만 2천대를 팔 수 있었고, 
1968년에는 20만대 이상을 판매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의 엘도라도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설계를
올즈모빌 토로나도에 이어 사용해 코드 L29 이례 최초의 전륜구동 미국차로 기록되었고, 
나중엔 엔진 배기량도 8.2L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전성기 동안에는 완전 자동변속기와 고성능 엔진, 
차량용 트랜지스터 라디오(1957)와 셀프 레벨링 서스펜션(1957), 
밝기 자동 조절식 전조등(1953) 등의 수많은 전동 편의장비처럼 
기술적으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중저류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Dual-Reservoir Brake Master Cylinder)는 
미국 법규에서 규정하기 6년 전인 1962년에 캐딜락에서 내놓았고, 
자사의 "터보 하이드라매틱" 3단 자동변속기와 완전자동 히터 및 에어컨 역시 
캐딜락에서 선보였다. 


당시 미국차의 특징이었던 테일핀 역시 
1948년에 P-38 라이트닝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은 할리 얼이 도입했고, 
총알탄 형상의 범퍼 가드도 캐딜락이 먼저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호황기를 누리고 있던 캐딜락에게는 
1973년 오일 쇼크와 GM 내부의 회사문화 변화라는 마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Posted by 그대옆에

1907년에는 세계 최초로 250개 부품을 표준화해 부품 호환이 가능한 모델 S를 선보였고, 
이 차는 1908년 영국왕립자동차클럽(RAC)으로부터 자동차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드와 트로피(The Dewar Trophy, 매년 뛰어난 성능과 기술력을 선보인 자동차 업체에게 상을 수여함)를 수상했다.


1909년 헨리 릴런드는 캐딜락을 제너럴 모터스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조건으로 
캐딜락 오토모빌 컴퍼니를 제너럴 모터스에 매각했다. 
1910년에는 지붕과 창문 일체형 바디의 자동차를 선보였고, 
1912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자식 시동장치를 장착한 모델 30으로 두번째 드와 트로피를 수상했다. 
1914년에 최초로 V타입 수랭식의 실린더 8개를 사용해 2,400RPM과 70마력의 성능을 낼 수 있는 
'V8 엔진(V8 Engine)'을 발표했고 이 엔진은 1915년에 V8엔진의 실용화에 성공하고 
대량생산 체제로 생산체제를 전환했다.


당시 인간을 다른 천체로 보낼 정도의 넘사벽의 호황을 누리던 
천조국 미국의 경제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엘도라도의 모델 변경 주기이다. 
엘도라도는 1953년에 1세대가 나왔는데, (당시 다른 미국차들의 유행처럼) 
1954년 바로 2세대가 출시되고 모델 주기가 길어봐야 4년 정도의 주기의 
모델 변경 주기를 가졌다.
특히 이때 GM을 이끌던 총괄 수석 디자이너인 할리 얼이 캐딜락의 디자인 전성기에 기여했고, 
한때 야구계의 모 인사나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을 높게 평가하곤 했다. 
특히 1959년식 캐딜락 라인업은 당대 최대 크기의 테일핀, 
길면서도 낮고 넓은 차체, 분홍색 외장컬러 옵션이 잘 알려져 
가장 잘 알려진 캐딜락 차종 중 하나가 되었다.


1950년에는 캐딜락이 르망 24시에 참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담당자였던 브릭스 커닝햄은 시리즈 61 쿠페를 바탕으로 제작된 차체에 
캐딜락의 새로운 160마력 OHV 331ci V8 엔진을 탑재하여 참가했었는데 
당시 섀시는 Frick-Tappett Motors가 포드 차량을 바탕으로 제작하여 
Fordillac(포딜락)이라고 불렸다. 


이 차를 보고 당시 프랑스인들이 Le Monstre라는 별칭을 붙여 유명해졌다.
캐딜락의 Le Mans 1950은 당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캐딜락이 실제 스포츠카 레이스에 어울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 주행이었다. 
결과적으로 르망 24시에서 순정 캐딜락이 10위, 
Le Monstre가 모래밭에 주행 실수로 빠져 순위를 잃어 11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Posted by 그대옆에

오늘부터 소개할 메이커는 또다른 미국의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 이다.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프리미엄 브랜드이자 링컨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양대 산맥이다.


1901년에 헨리 포드의 '헨리 포드 컴퍼니'로 시작했으며 
포드가 포드 모터 컴퍼니로 옮기자, 헨리 릴런드는 파산 위기에 있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캐딜락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1909년 GM에 인수되어 GM의 럭셔리 디비전이 되었다. 
게다가 캐딜락을 GM에 판 이후 릴런드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현재 포드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링컨이다. 
포드와 GM의 라이벌적 위치를 고려하면 엄청난 아이러니하다.


캐딜락이란 브랜드 이름은 1701년 미국 디트로이트시를 개척한 프랑스 귀족이자 탐험가인 
'르쉬외르 앙투안 드라 모스 카디약(Le Sieur Antoine de la Mothe Cadillac)' 경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캐딜락의 엠블럼 또한 캐딜락 가문의 문장을 따왔다.


약칭은 "캐디(Caddy)". 

1902년에 '가변식 밸브 타이밍 1기통 엔진을 장착한 캐딜락 최초의 프로토타입 모델 
Runabout and Tonneau를 750달러로 출시했다. 
이 차량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25MPG(Miles Per Gallon)의 연비와 
시속 30마일의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1갤런은 약 3.78 리터, 1마일은 약 1.6 km 정도이므로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풀어 말하면 연비는 약 10.6 km/L, 속도는 약 48km/h 정도 된다.


이후 1903년 뉴욕오토쇼에서 양산형 모델 A를 선보였다. 
모델 A는 1903년을 통틀어 2,497대가 제작되었고 상류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

1905년 캐딜락은 4.9L 4기통 엔진을 장착해 성능을 향상시킨 모델 D를 출시했다. 
유성 기어식 3단 변속기가 장착되었고 제어식 스로틀, 
그리고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크루즈 컨트롤이 장착되었다.

Posted by 그대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