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식, 모델에 따라 출력은 천차만별이다. 
그 이유는 오일쇼크 때문인데, 
오일쇼크와 배기가스 규제의 영향으로 출력을 줄이고 연비를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한 예로 1970년식 454 모델은 460마력의 뻥마력인데 비해, 
1975년식 350 모델은 167마력으로 3배씩이나 차이난다.


후기형에 속하는 1978년 모델부터 적용된 패스트백형 대형 리어 글래스 윈도우는 
한동안 콜벳의 아이덴티티 중에 하나로 자리잡아서 C6 모델까지 쭈욱 이어진다.

안전 규정으로 1973년부터 전면부 철제 범퍼대신 우레탄 범퍼, 
1974년부터는 뒷쪽 철제범퍼도 우레탄 범퍼로 바뀌면서 
1972년식이랑 1974년식이랑 디자인이 판이하게 다르다.


1981년부터 카뷰레터를 걷어내고 Cross Fire Injection이라는 새로운 연료분사기를 도입했다.

오랜 기간 생산되었다보니 가격 상승이 엄청나다. 
더군다나 1970년대 초 오일쇼크로 인한 심각한 인플레이션까지 겹쳐서 가격상승률이 엄청나다. 
1968년 최초기형 모델의 경우 기본가가 $4,660 이었는데, 
1982년식 최후기형 모델은 기본가가 $18,290으로 4배 가량 뻥튀기되었다. 
같이 오일쇼크 때문에 장수한 같은 집안의 7세대 서버번도 4배 가까이 가격이 뛰었다.


국내에는 10대 정도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모 중고차 매장 내에 숨겨져있다. 
세워져있는 수많은 자동차들 사이사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빛바랜 노란색 차량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그 차량이다. 
해당 차량은 번호판이 없으며, 먼지에 뒤덮여 관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10대중에 5대이상이 오일쇼크이후 중~후기형 350모델이고 1~2대는 초기형 3~400마력짜리 버전이다.

전설의 용자 다간의 터보 랜더가 변형하는 비클 모드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과거 80년대 플라스틱 장난감 자동차에 이 모델의 디자인을 인용하여 생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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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외에도 GM에서는 캐딜락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겠다고 
렌터카로 물량을 왕창 몰아주면서 중고차 가격과 브랜드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뻘짓을 링컨과 같이 밀어붙이고,
1980년대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4-6-8기통 변환 엔진을 장착하는 무리수를 두는 등, 
위에서 상술한 온갖 삽질로 인해 캐딜락은 고급차로서의 옛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모기업 GM의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에 
사람들은 캐딜락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Art & Science와 고성능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부활 (1999 ~ 2024)


캐딜락은 할아버지들의 바퀴 달린 쇼파라는 굴욕적인 평가, 
낮은 판매 실적, 실추된 브랜드 가치를 회복할 계획을 세웠다. 
1999년 북미국제오토쇼에 Evoq라는 컨셉카를 통해 
새로운 캐딜락의 디자인 랭귀지 Art & Science를 선포했다. 


캐딜락이 아트 앤 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인 초창기 디자인이 가장 과감했으며, 
최근의 디자인은 트렌드와 공기역학을 따라가서, 
초기의 각지고 날카로운 조형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의 조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독창성은 유지하면서 세련미를 더하고 있다. 
양산차에서는 1세대 CTS와 XLR부터 Art & Science가 적용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컨셉카 Evoq는 양산차 하드톱 컨버터블인 XLR에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다. 
또한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2002년에 발표된 미드십 스포츠 컨셉트 차량인 
시엔이 주인공 원본의 차량으로 등장하여, 경찰차를 따돌리는 등 나름 활약을 한다.


2000년도, 캐딜락은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궁극적으로는 르망 24시에 다시 참가하기 위해 
노스스타 LMP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당시 아우디, 크라이슬러, 포르쉐 등도 참가 중이었던 LMP900클레스에 참가하는데, 
이는 GM이 쉐보레 콜벳 프로토타입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위해 
관련 인력과 자금을 돌리기로 결정한 2002년까지 이뤄졌다. 
ALMS의 팩토리 팀으로 Riley & Scott 팀이 운영하도록 했고, 
유럽 스포츠 레이싱 월드 컵(European Sports Racing World Cup)에서는 
DAMS 팀이 LMP 운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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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쇼크 이후 계속되는 침체기 (1973 ~ 1998)

오일 쇼크 이후 캐딜락 역시 스빌이나 1977년식 드빌을 비롯해 
다운사이징을 모토로 한 차종을 제작하기는 했으나, 
쉐보레 카발리에를 배지 엔지니어링한 시마론은 역대급 망작으로 판정받고 쓸쓸히 퇴장했다. 
시마론은 GM J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플랫폼은 쉐보레와 뷰익, 올즈모빌, 폰티악, 오펠, 복스홀, 이스즈자동차 등 
정말 당시의 GM 브랜드라면 다 돌려썼다. 
그나마도 성능 같은 부분도 다른 형제차들과 차별화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더 발전한 제품으로 승부하지 않고 
비용절감으로 이윤을 내겠다는 GM의 재무부 출신 신규 경영진의 뜻을 충실히 따른 
총괄 수석디자이너 어빈 리비츠키의 지휘 아래, 
배지 엔지니어링을 남용하거나 모든 차에 FF 레이아웃을 도입하겠다는 
당시 GM의 무리수적인 정책에 의해, 
웅장한 후륜구동 레이아웃이나 이에 준하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버리고 
가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쓰는 등, 
가면 갈수록 캐딜락의 고유한 디자인 특징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나마 피닌파리나와 공동 제작한 알랑테 컨버터블이 예외이기는 했으나 
상업적으로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나머지 라인업은 폰티악이나 올즈모빌, 뷰익 차량들의 붕어빵에 불과해져갔다.


1991년에 등장한 10세대 엘도라도는 명가가 얼마나 처절하게 몰락했는지의 척도였다. 
지난 1세대부터 4세대까지의 화려함의 극치도 
5세대부터 이어온 고유의 디자인 헤리티지도 사라진, 
과도한 프론트 오버행과 구식의 차체 비례는, 
캐딜락이라는 브랜드와 그 대표작의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줬다. 
1980년대 중후반 GM의 전형적인 배지 엔지니어링 차종이었던 
9세대 엘도라도보다는 상황이 낫긴 했으나,
결국은 1990년대 RV 열풍에 밀려 판매부진에 시달리다 10세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1993년에는 전륜구동이었던 플래그십 대형 세단이었던 캐딜락 식스티 스페셜의 후속으로 
후륜구동 캐딜락 플리트우드 브로엄을 출시했으나, 
미국차 특유의 크게 떨어지는 연비+당시 캐딜락 브랜드의 이미지 악화가 겹쳐서 
판매량은 바닥을 기었고 결국 출시 3년만인 1996년에 단종되는 결과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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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링컨에 대해서 알아보자.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 포드의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과 함께 미국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양대산맥이다.


링컨은 모회사 못지않은 유서깊은 그리고 험난한 역사를 자랑한다. 
1917년 캐딜락 출신 헨리 리렌드가 본인이 1864년에 직접 투표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세웠다. 
링컨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항공기 엔진을 제조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고급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22년 포드 모터 컴퍼니에 인수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가 되었다.


포드 모터 컴퍼니 산하에서 링컨은 제퍼와 컨티넨탈 등 
고급차의 대명사로 꼽히는 차량들을 내놓으며 캐딜락과 함께 쌍두마차를 이끌었다. 
특히 1970년대 들어서는 엄청나게 긴 휠베이스와 널찍한 실내,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전면부 그릴 디자인으로 극도로 미국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 대통령의 공식 의전 차량으로 쓰이면서 
링컨은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오일 쇼크로 인한 침체기 (1973~2012)

1970년대 오일 쇼크로 인해 링컨을 포함한 고급차 시장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다른 회사들이 재빨리 다운사이징과 모델 개편을 펼치는 사이 링컨은 시대에 뒤떨어졌고, 
링컨의 대표 모델인 컨티넨탈은 '가장 큰 양산차'라는 
당시로서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성공에 안주하는 사이 디자인과 파워트레인은 8년 넘게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링컨은 부랴부랴 대대적인 개편을 벌이고 타운카 등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면서 
다행히 시장에서 원래의 입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라이벌인 캐딜락을 앞지르며 원래의 위상을 완전히 되찾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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