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엔진 안에 변속기가 들어가 있는 구조는 변속기를 조작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미니의 A-시리즈 엔진이 쓰인 차들은 비슷한 문제를 계속 껴안아야 했다. 
또한 1980년대로 가면은 당대 소형차에 퍼지기 시작한 5단 수동변속기를 
채용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어서 미니의 가로배치 전륜구동 시스템은 
BMC 내부에서만 쓰다시피했다. 
한편 미니와 ADO16을 벤치마킹한 피아트에서는 
변속기를 엔진 안에 집어넣는 대신 엔진 뒤에 배치하는 가로배치 전륜구동을 제시했고, 
미니의 전륜구동 방식보다 널리 보급된 전륜구동 시스템이 되었다. 
이때 나온 첫 차들이 아우토비앙키 프리뮬라와 피아트 128이다.


서스펜션도 압축고무로 만들어진 러버콘이라 부피가 작으며 접지력과 핸들링이 좋은 대신 
승차감이 불편했다. 
1960~1970년대 사이에 알렉스 몰튼이 제안한 하이드로래스틱 유압 서스펜션이 
대신 쓰이기도 했지만 큰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도로 러버콘으로 돌아갔다. 
이 알렉스 몰튼은 자전거계에서 고가의 영국제 수제작 미니밸로로 유명한 그 상표 맞다. 
핸들과 연결된 스티어링 칼럼의 각도도 꼿꼿하게 선 편이라 
마치 버스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도 들었다. 
핸들의 각도가 40~45도 가량의 각을 이루고 있으며, 
일반 승용차에 비하면 각도가 가파른 편이다.(1997년식/1959년식)


이와 같이 경제적인 자동차였으나 클래식하면서도 군더더기 없고 
세련된 디자인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존 쿠퍼라는 레이서 겸 쿠퍼 포뮬러 1팀의 창립자가 랠리에 미니를 개조한 모델을 몰고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는 바람에 성능으로도 인정을 받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존 쿠퍼의 이름은 John Cooper Works라는 새 이름으로 붙여져서 
미니의 고성능 모델 라인업에 붙게 되었고, 
1968년대에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결성되고 1971년에 미니 1275GT가 
쿠퍼의 대안으로 등장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73년까지 쿠퍼 명칭을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브리티시 레일랜드 창립 시 상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존 쿠퍼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끊으면서 단종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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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미니에 대해서 알아보자.

영국의 소형차 브랜드이다. 
원래는 브리티시 모터 컴퍼니(BMC)산하에서 생산한 자동차였다가 
브리티시 레일랜드, 그리고 BMW를 거쳐가면서 별도의 브랜드가 되었다. 
미니스커트의 어원이며, 
미니라는 명칭은 오늘날의 작다는 의미의 보통명사화된 단어로 널리 자리잡게 되었다.


귀여워보이는 외모와 실제로도 굉장히 아담한 크기가 특징이지만, 
3세대인 현 모델은 생각보다 덩치가 꽤 크다. 
경차보다는 소형차에 가까운 크기.


2005년에 BMW 코리아를 통해 정식 진출된 이후 작고 귀엽고 레트로한 감성 덕분에 
여성들에게 자주 팔려나가는 수입차지만, 
막상 몰아보면 절대로 몰기 쉬운 물건이 아니다. 
서스펜션이 진짜 딱딱해서 승차감이 매우 단단한데다 
런플랫 타이어이가 순정으로 출고되기 때문에 편하고 작은 차를 바란다면 
사지 말아야 할 차로 악명 높은 특이한 수입차. 
BMW 드라이빙 센터 내에도 전시되어 있으며, 
서킷 체험도 해 볼 수 있다. 
일부 전시장/서비스센터가 BMW와 같이 있는 곳도 있다.

반대로 딱딱한 서스펜션과 탄탄한 타이어로 한계그립, 주행능력과 핸들링이 굉장히 좋다. 
미니를 호평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 점에 주목하며, 
작지만 운동성능을 굉장히 잘 갖춘 자동차. 
그래서 미니를 특징을 나타낼 때 고카트(Go-Kart) 필링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옛날부터 유니언 잭 사랑으로도 유명한데, 
현재 미니에서 출시하는 모든 모델의 후미등이 유니언 잭 디자인이며, 
미니의 액세서리들 중 상당수가 유니언 잭 디자인이다. 
영국 여왕의 생일을 맞아서 유니언 잭 에디션을 출시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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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소개할 차량은 랜드로버 디펜더이다.

랜드로버 디펜더는 영국의 랜드로버 사에서 1948년부터 개발된 다용도 사륜구동 차종이다. 
1948년부터 2015년까지 군용 베이스 모델로 제작된 1세대와, 
2020년에 다목적 SUV로 새로 부활하는 2세대로 나뉜다. 

1세대 : 디펜더 (1948 ~ 2015)


1세대는 지프 랭글러나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같은 일명 "깍두기 차량"으로, 
와일드하게 생겼다. 
초기에는 랜드로버 디펜더란 이름을 쓰지 않고 숏보디는 랜드로버 90, 
롱보디는 랜드로버 110이라는 이름을 썼다가 
90년대에 디펜더라는 이름으로 통일하여 숏보디는 디펜더 90, 롱보디는 디펜더 110이라고 했다. 
1980년대에 랜드로버의 판매량이 급감하며 회사가 곤경에 빠졌을 때, 
단 1년 만에 판매량을 급증시키며 회사를 회생시킨 차종이기도 하다. 
1985년부터 2015년까지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도 
30년동안 한 해에 7만 대씩 꾸준히 팔리고 있었다.


엔진은 2.2 ℓ 디젤 엔진이나 5 ℓ V8 슈퍼차저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다. 
한 때는 2.25 ℓ 나 2.5 ℓ 4기통, 3.5 ℓ 나 3.9 ℓ V8, BMW제 2.8 ℓ 직렬 6기통 엔진들이 장착되기도 하였다.
여러 나라의 군대에서 사막, 비탈, 개울 같은 험지에서 사용하는 용도로 많이 쓴다. 
무한궤도로 마개조된 차도 볼 수 있다.


오리지널 랜드로버의 직계 후손으로, 
한동안 "랜드로버"라 하면 바로 디펜더를 가리켰다. 
1970년 미국 SUV 시장을 노린 랜드로버 레인지로버가 출시되고 나서야 
랜드로버는 두 가지의 라인업을 가지게 되었다. 
그 전에는 디펜더를 전장에 따라 "랜드로버 90", "랜드로버 110" 등으로 부르고, 
레인지로버는 그냥 레인지로버라 불렀다. 
1989년에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나오면서야 이 차에게 디펜더라는 새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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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고급 세단이라 그런지 현대 그랜저, 제네시스 G90, 기아 K9 등과 함께 
고위 공무원들의 관용차로도 많이 사용되는 차량이다. 
장성들의 관용차로도 쓰이는데 각각 준장, 대장, 중장에게 지급되고 G80은 소장에게 지급된다.


영국에서는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 후에도 G80이 아닌 현대 제네시스로 계속 팔리다가 철수했는데, 
그 이유는 현대차라는 평범한 중저가 회사에서 
가격만 비싸게 파는 차라는 이미지로 인식이 되어있는 데다가 
페라리보다 배출가스도 많이 분출하고 연비 또한 좋지 못한 차로 낙인찍혀서이다. 
2015년에 진출해서 철수 할 때까지 고작 50대만 팔렸고 
결국 영국 매체에서 가장 안 팔린차 1위로 찍혔다. 
정확하게는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 전에 출시(?)했던 것을 
신 브랜드 런칭 없이 계속 팔다가 단종시킨 것이다. 


즉, 영국에는 브랜드로서의 제네시스가 아직 출시되지 않은 것일 뿐이며, 
G80의 신형이 출시된 후 G70, G90과 함께 정식으로 런칭될 가능성이 높다. 
현까들은 이 건을 물고 늘어지면서 '제네시스가 영국에서 판매가 부진하여 철수하였다'라는 
댓글을 여기저기 도배하곤 하는데, 
'현대 제네시스'라는 차가 영국에서 철수한 일은 있지만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는 아예 영국에 진출한 적이 없으므로 현까들의 뇌피셜이다. 

제네시스는 2020년에 유럽에 진출할 예정이다.


영실업 기획, 스튜디오 버튼 제작의 또봇 V에서 
현대 브랜드 시절의 제네시스 G80을 트래픽카로 볼 수 있다. 
같은 제작사의 강철소방대 파이어로보에서도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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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영국식 2인승 라이트웨이트 로드스터라는 컨셉에 걸맞는 

준수한 핸들링과 주행안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클래식한 외모 덕분에 이 차량이 계속해서 생산된다는 사실 자체로도 

전 세계의 차덕후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연간 내수 100대와 수출 200대'라는 목표를 두고 

평택 공장의 수가공 라인을 돌렸는데, 

평택에선 밤새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직원들은 거의 노이로제 상태였다고 전해지는 설이 있을 정도로 

쌍용자동차에서 칼리스타에 거는 기대는 큰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판매가만 3300만~3800만원 수준이라서, 

당시의 사치품을 배격하는 국민감정에 밀려 예상보다 1년 빠른 1994년에 생산이 멈춘다. 

그것도 연 20대 내외의 판매에 머물러서, 단종 시점에서 최종 생산대수가 고작 78대였다.

쌍용 칼리스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92년 기준으로 최고급 세단이 1800에서 1900만원 수준이었다. 

레이싱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20세기 한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3천만원 중후반대의 2인승 로드스터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3800만원은 2017년 시점에서도 꽤나 높은 가격이다.


여담이지만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 이 차를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별다른 근거는 없다. 

애시당초 재벌그룹에서 오너가 싫어하는 일이 이루어질 리가...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누가 이런 멍청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말인가? 

자동차에 꽂혀서 쌍용그룹 다 말아드신 분이 나중에 오리발 내미는 얘기를 그대로 받아쓴 듯 하다.


쌍용자동차 마크를 달고 생산된 최후의 칼리스타 78대 중 

약 60여대가 해외의 자동차 수집가들에게 반출되었고, 

교통사고로 말아먹은 몇 대인가를 제외하고 나면 2010년 기준으로 

16대가 국내에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쌍용 칼리스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워낙에 희귀한 차량이라 오너들 사이에서도 극도로 조심스럽게 운행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희귀성에 걸맞게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중이라고 한다. 


2016년 초까지는 서울디자인고등학교/동도중학교 맞은편 사진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건물 일부가 약국으로 바뀐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이다. 

전시했던 차종은 구형 초록색 번호판인 점이나 

타이어 마모가 거의 되어 있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말로 쇼윈도 장식용으로만 배치해 둔 것으로 보인다. 

간혹 사진 촬영용으로도 쓰이기는 한 듯 하다.

쌍용 칼리스타 보배드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보배드림에 2016년 5월 3일자로 매물이 나왔다가 7월 기준으로 거래 완료 상태.

5800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을 자랑하며, 

31,900km의 짧은 주행거리나 관리 상태를 보면 

사실상 소장용으로만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딜러들이 차량을 개인 소유할 목적으로 거래 완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제3자가 사갔는지 딜러 소유로 전환되었는지는 판별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같은 팬더사의 차량으로 솔로의 후속차량인 솔로 II(Solo II)또한 

해외에서도 몇대 남지 않았다는 소리가 있다


울산에 있는 주연자동차프라모델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주행가능한상태라고 한다.


이 차량을 보개 된다면 바로 로또 사러 가시기를 바란다.

엄청난게 희귀한 차량으로 이제 박물관에서나 봐야할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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